고창하면 생각나는 것은? 고인돌·선운사·수박…. 그 중에서 문수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문수사로 향하며 지나쳤던 정겨운 시골마을, 일주문에서 문수사까지 이어지는 울창한 단풍나무숲길, 소박한 절에서 느낀 아늑함과 푸근함이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뇌리에 깊게 박혔다. 일상의 번뇌를 잊게 해주고 청아한 고요를 선물해주는 문수사, 그 호젓한 여행지로 떠나 보자.
△ 문수사 가는 길은 속세와 멀어지는 길
고수면에서 문수사 이정표를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서면 보기 드문 시골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드문드문 산 아래 자리 잡은 기와집, 저수지, 시골 초교, 요즘엔 좀처럼 보기 힘든 다랭이논 뿐만 아니라 밀밭도 볼 수 있다. 구수한 시골 정취와 함께 시골길을 달려 마을을 벗어나면 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길은 점점 더 고도가 높아지고, 이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보면 다시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이정표를 따라 다시 산길을 달리니 드디어 문수사 일주문이 드러난다. 적막한 산 속이 마치 세상과 분리 돼 있는 듯하다. 오직 자연의 소리와 모습만이 가득한 길, 문수사로 향하는 긴 여정은 속세와 멀어지는 길이었나 보다.
△ 문수사 천연기념물 수령 400년 '단풍나무 숲길'
문수사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일주문에 차를 대고 문수사까지 걸어야 한다. 일주문에서 문수사로 이어지는 단풍나무숲은 수령 100년에서 400년으로 추정되는 500여 그루의 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숲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각과 후각이 반응한다. 단풍나무와 함께 느티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빼곡히 숲을 채우고 울창한 잎은 하늘마저 가려버렸다. 보이는 곳마다 초록 일색이다.
숲이 터널을 이룬 이곳엔 외부의 공기마저 비집고 들어오기가 힘든가 보다. 터널을 걷는 동안 진한 숲 향기가 남다르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인적이 거의 없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만이 잔잔히 들려올 뿐. 이렇게 고요한 곳에서 단풍나무는 400년 동안 한곳을 지켜왔다. 거대한 단풍나무 아래에서 인간은 자연 앞에 언제나 겸손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단풍나무 숲을 지나면 주차장이 또 하나 나온다. 주차장 왼편에 가파른 길이 있는데, 절로 향하는 길답게 연등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이 이 길에 청량감을 더해준다. 돌에는 청정지역을 나타내는 이끼가 가득 피어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문수사 입구로 이어진 돌층계가 나온다. 돌층계 옆에도 꽤 오래돼 보이는 고목들이 마치 신령님처럼 서있다.
△ 인자한 중년 부인의 문수보살은 성찰의 쉼
연등길을 지나 드디어 문수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문수사는 본사인 선운사의 관리를 받는 작은 말사로 청량산 혹은 축령산이라고 불린다. 이곳은 644년(의자왕 4) 자장(慈藏)이 창건했다. 사찰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의하면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하는 길에 이곳을 지나게 됐는데, 이 산이 당나라에서 수행하였던 청량산과 비슷해 이곳의 석굴에서 7일 동안 정성껏 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땅 속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나오는 꿈을 꾸자 그곳을 파보니 실제로 문수석상이 나와 그곳에 문수전을 건립하고 절 이름을 문수사라 하였다.
문수보살을 모시는 문수사는 크고 화려한 선운사와 달리 아주 작고 소박한 절이다. 그래서 더 고요하고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발걸음도 조심스러워지고 목소리도 차분해진다. 먼저 문수보살의 지혜가 샘솟는다는 거북 모양의 용지천에서 목을 축이고 대웅전을 둘러본다.
정갈하고 단정한 느낌이 강하지만 처마 밑 장식은 화려하다. 재미있는 대목은 처마 밑 장식에 용의 얼굴처럼 그려져 있었는데 위엄 있기 보다는 '방긋' 웃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절은 세운 자장스님이라는 분은 재치가 넘치는 분이었나 보다.
바람이 안내하는 고운 길을 따라 문수보살이 있는 문수전으로 가본다. 문수전 안에는 돌로 만들어진 문수보살이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다. 인자한 중년 부인의 모습이다. 문수보살을 보고 나니 이 절의 아늑한 모습이 문수보살을 그대로 닮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한 절에서 편안히 생각에 잠겨본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하나둘 차례대로 정리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