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출신의 이창성 할아버지(86)는 1950년 6·25전란 속에 월남을 하던 중 전쟁에 참여했고, 중국군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후 이등상사로 제대한 뒤 현재 진안군 마령면에 정착한 참전용사다. 농사를 지으며 평범한 우리의 이웃으로 살고 있지만, 그는 전쟁의 아픔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총상을 당해서 야전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피가 살과 옷에 엉겨 붙어 가위로 간신히 자르고 수술을 했다는 상이용사 남금암 할아버지(81세)는 2년 전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살고 있다. 휴전 1개월 전에 참전한 김원배 할아버지(79세)는 제대를 한 뒤 먹고 살기가 힘들어 '차라리 상이군인이라도 되었더라면 보상금이나마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고 한다.
사진작가 김지연씨의 앵글에 잡힌 6·25 참전용사의 몇몇 단면이다.
"주변에서 6·25참전 용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까마득한 일로 여겨서 6·25참전 용사들이 아직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 조차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평소 지역의 평범한 사람들을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온 김씨가 우연히 한 6·25 참전용사를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남겨야겠다는'사명감'을 갖게 됐다.
"불운한 시기에 태어나서 일제강점기 식민지 국민으로 핍박을 당해온 사람들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게 죽임을 당했거나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 걸고 싸우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일부 극우 혹은 극좌 단체들의 편향된 행동으로 인해 나라를 위해 목숨 건 사람들의 활약이 폄하되거나 경시되는 경향도 없지 않았습니다."
좌우익 세력의 이데올로기 편 가르기를 해서 죽이고 죽었던 비극의 역사를 지켜본 산증인들이 하나 둘 씩 스러져가는 현실에서 정작 평범한 삶을 살아온 주변 참전용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게 사실.
"마령면에 참전 용사가 한 두명밖에 없을 줄 알았는 데, 인터뷰한 분만 26명이나 됩니다."
김씨는 마령면에 사는 26명의 참전 용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에 담았다. 지난 겨울 동안 이루어진 이같은 작업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에 '할아버지는 베테랑'이란 타이틀로 풀어놓는다(22일부터 9월30일까지).
그가 작품에 담은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의 주름진 모습에서 지난날 그들의 고단한 삶과 근현대 굴곡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개막식에는 작품 주인공들이 참여해 관람객들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도 준비됐다.
김씨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시선에서 한 분씩 멀어져가는 베테랑 용사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했다.
△'할아버지는 베테랑'사진전=22일부터 9월30일까지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진안군 마령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