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은 시대의 거울이다. 유물을 통해 당시대 삶과 문화를 읽을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있어도 무심코 간과해온 지역의 유물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자리를 마련했다.
1999년 7월 다카하라 히미꼬(高原 日美子)라는 여인이 일본 후쿠오카현청교육위원회를 방문하여 한국 종 1구를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위원회는 여사에게 원 소유국의 문화기관에 기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을 하였고, 고심 끝에 여사는 같은 해 10월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기증할 것을 약속했다. 같은 해 11월 5일 동종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고향을 떠난 뒤 실로 73년 만에 그리운 고국 땅을 밟은 것이었다. 이 동종은 2001년 9월 21일 보물 제1325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국립전주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이 동종이 국립전주박물관의 소장품이 된 이유는 일제강점기 3대 조선총독인 사이또 마코토(齊藤實)가 1926년 일본 수성원(水城院)에 동종을 기증하면서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이또의 편지에 따르면 동종은 당시 전주면(全州面)에 살던 박모(朴某)가 자신 소유 낙수정(樂壽亭) 수리 시 땅 속에서 발견한 것으로써, 1916년 경성(京城)에서 열린 공진회(共進會)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동종의 원소재지가 전주였던 것이다.
한편 동종이 발견된 곳에서 1909년에 '開元寺'(개원사)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동종은 전주 개원사라는 절에 걸려있던 종으로 어느 때인지 모르지만 종을 매다는 부분이 깨어지자 땅속에 묻혔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개원사는 폐사되고 조선시대 낙수정이라는 정자가 들어섰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 낙수정 동종은 통일신라 동종을 연상시키면서도 고려 초 동종의 세부 표현과 유사한 것으로 미루어 10세기 중엽에서 11세기 전반에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이 동종과 흡사한 종이 일본 원청사(圓淸寺)에도 있다. 이 두 종은 크기는 물론이고 넝쿨무늬·비천 등의 모습까지도 유사하여 같은 장인(匠人)이 동일한 문양판(文樣板)을 사용하여 조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불가(佛家)에서 동종의 소리는 '일승지원음(一乘之圓音)', 즉 '부처의 소리'를 의미한다. 또 종을 매다는 부분의 대나무 관과 같은 음통은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라의 보물 만파식적(萬波息笛)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천년 전 옛 전주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고 소원을 들어주었을 이 동종의 소리는 지금도 국립전주박물관 전시실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진정환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