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을 알아차린 어린 나무가 새잎을 피워내는 모습은 내게 늘 경이였다. 가늘디가는 실가지로 어떻게 추운 겨울을 지내는지 봄이 되면 틀림없이 새잎이 돋아나 아침 햇살을 받았다. 나무가 내 키위로 자랐다. 어느 해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건너 간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니? 세상에 나뭇잎에 바람이 불자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나뭇잎 부딪치는 그 부드럽고도 감미로운 박수소리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어느 때는 딱새가 빈 나무 가지에 날아와 앉아 울기도 했다. 나무가 지붕 가까이 자라자 달빛 받은 나무 그림자가 내 창호지 문에 어른거리기도 했다. 바람 없이 눈이 내린 아침이면 그 나무 가지에 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다가 내가 문을 열면 눈들이 허물어지기도 했다. 서리꽃이 피기도 하고 소낙비가 내리면 세상에! 나뭇잎에 소낙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가 내 팔뚝 만하게 자랐다. 우리 집 지붕 높이만큼 자란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걱정을 했다. 집안에 저렇게 큰 나무가 있으면 집이 치인다고 했다. 그랬다. 정말 큰 느티나무에 집이 치인 것을 나는 보았다. 이웃마을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비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해 느티나무 가지가 찢어져 느티나무 아래 있는 집이 폭삭 무너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어느 해 봄 퇴근 해 보니, 강가 언덕 조금 넓은 빈 터에 나무가 누워있었다. 태환이 형과 함께 나무를 그 곳에 심었다. 자리를 옮긴 나무는 잘 자랐다. 내가 나무를 귀하게 생각하며 보살피자 동네 사람들도 나무를 귀하게 대해 주었다. 우리 집 나무가 동네 나무가 되었다. 내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우리 집 마당에서처럼 그 나무를 늘 보고 살았다. 그 나무에서 일어나는 봄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아침저녁 밤 낮, 해 뜨고 달 지고, 새잎 피고, 단풍들고 잎 날리고, 눈 오고, 비오고, 바람 불고, 소쩍새가 날아 와 울며 그렇게 세월이 갔다. 나무에 동네 아이들이 올라가 놀고 어느 날부터 동네 사람들이 나무 아래로 들어와 쉬게 되었다. 여름이면 나도 나무 밑에 앉아 흘러가고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고, 달이 뜨면 내 그림자를 나무아래 숨기고 나무 밑을 서성이며 생각을 골랐다. 집을 떠나 어디 가서 잘 때도 그 나무는 늘 내 머리맡에 강물을 배경으로 서 있다. 나는 지금도 그 나무 아래에서 잠들고 잠을 깬다. 내 아름으로 한 아름으로 넘게 자라면서 나무가 말해주는 것을 받아 적은 글들이 많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 나무는 내게 시와 삶이 하나임을 가르쳐 줄 것이다. 바람 부는 날 그 나무아래 지날 때 마다 수많은 나뭇잎들이 치는 그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박수 소리. 내 인생. 나의 시. /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