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雪夜歸人圖-최북의 말

유강희

내 눈 빼간

 

도적의 눈망울은

 

얼마나 차고 맑나

 

그 도적을

 

사랑하게 되는 밤이

 

올까 나는 두렵다

 

방금 아궁이 속에서 뛰쳐나온

 

새까만 개여

 

삶지 못한 삶이라도

 

맘껏 욕보여라

 

빛 속의 빛은

 

어둠보다 어두운

 

빛보다 밝은

 

노래이길 바랐으나

 

지나간 도적이여

 

남은 오른쪽 눈으로

 

남은 왼쪽 눈을 켜라

 

눈보라는

 

휘잉휘잉 뺨을 갉고

 

아직 불사르지 못한

 

어린 붓 한 자루

 

총총 발자국을 뒤따른다

 

가자, 눈 없는 눈이

 

가리키는 저 먼 집으로

 

※ 유강희 시인은 198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으로 '불태운 시집' '오리막'과 동시집 '오리 발에 불났다'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