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

송준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야, 세상 참 요지경속이더라. 안주로 나온 파전을 간장에 찍으면서 친구가 입을 열었습니다. 비도 오는데 낮술이나 한잔 하자고 해서 함께 막걸리잔을 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며칠 전에 말이다, 이 몸이 자동차 사고를 덜컥 냈다는 거 아니냐.

 

신호대기를 하고 있다가 잠깐 딴생각을 하는 바람에 앞차가 출발하는 줄 알고 무심코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는데, 이게 스르르 밀려가다가 그만 앞차를 추돌하고 말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엑셀을 밟은 것도 아니니까, 그냥 갖다 댄 수준이었거든.

 

친구는 앞차에서 내린 젊은 부부한테 어디 다친 데는 없냐고 묻고, 교통이 혼잡한 퇴근시간이고 해서 명함을 교환한 다음 보험처리를 약속하고 자리를 떴다고 했습니다. 그럼 됐네? 요즘에는 보험회사에서 다 알아서 처리하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순진무구하게도.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왜, 또 뭐가 문젠데? 사고접수를 하고 이틀인가 지나서 보험사 직원이 전화를 했더라. 그 친구가 사고처리 경위를 설명해주는데, 세상에 뭐 그런 사람들이 다 있냐?

 

보험사에서는 피해자가 원하는 공업사에 자동차 수리를 맡겼고, 그 기간에 타고 다닐 차량도 임대해 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그 운전자하고 배우자가 목이 뻐근하다면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거야. 내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추돌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사고였거든.

 

짐작이 갔습니다. 젊은 부부는 일반 상해보험 같은 걸 가입해서 보험금을 타려고 했을 것이고, 병원에서는 또 환자가 아프다니까 상해 정도에 관계없이 입원을 시킨 게 뻔했습니다. 보험사로서야 현행법상으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년 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비슷한 사고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신호대기를 하고 있다가 뒤에서 추돌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뒷차 운전자는 만취상태였는데, 행색을 보니 험한 일을 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나는 다친 데가 없다, 내 차 범퍼만 교환해 준다면 보험사든 가해자한테든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걸 약속한다, 대신 저 운전자의 음주사실만은 문제를 삼지 말아 달라. 현장에 도착한 보험사 직원에게 나는 쉽게 결정하고 부탁했습니다.

 

저런 만취 운전자한테 사고를 당했을 때는 맘만 먹으면 기백만 원은 거저 손에 쥘 수 있거든요. 나를 집으로 태워다주면서 그렇게 말하는 보험사 직원에게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착한 일을 했으니 언젠가는 좋은 일이 생기겠지요.

 

야, 나는 말이다, 그런 사고를 갖고 병원에 입원해서 보험금을 타내려는 사람도 문제지만, 양심을 파는 의사들은 거의 범죄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당장 수입이 보장된 환자를 앞에 두고 의사로서의 양심 따위가 무슨 대수겠냐.

 

내 잔을 채워주는 친구의 씁쓸해하는 낯빛을 보면서 나는, 요즘 경기도 어렵다는데 그 젊은 부부가 보험금으로 이번 여름휴가를 잘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도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하긴 그 사람들도 품위유지를 제대로 하고 살자면 의사로서의 소신 따위에 연연해서는 안 되겠지?

 

※ 송 교수는 진안 출신으로 전북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