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용의 무주프로젝트

지난해 3월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1945~2100)의 마지막 2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를 보았다. 영화는 시대와 긍정적으로 만나지 못한, 철저하게 자연과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에 생애를 바친 건축가 정기용의 철학과 삶의 여정을 담고 있다. 지난 3월 8일 개봉한 이후 지난달 30일까지 관객 4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상업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 독립영화에 4만 명 관객은 예사롭지 않은 숫자다. 자연히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는 응용미술을, 대학원에서는 공예를 전공한 그는 프랑스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돼 파리 장식미술학교·제6대학·제8대학에서 실내건축·건축·도시계획을 전공했다. 1986년에 귀국해 기용건축을 열었으며, 지금까지 줄곧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간만들기에 몰입해왔다. 자연과 감응하며 사람과 소통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위해 치열하게 작업해온 그의 철학은 공공건축물에 담겨져 대중들과 만났다. 그의 이름을 알리고, 건축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새롭게 인식시켜준 통로 또한 이들 공공건축물이다. 전국 각 도시에 지역마다의 특성을 살려 만들어진 '기적의 도서관'이 그 대표작이다.

 

대장암 말기의 고통 속에서도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회를 위해, 다큐멘터리를 위해, 회사일과 강의를 위해 보내는 그의 일상을 통해 영화는 담담하게 그가 지켜온 건축 철학과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화려함이나 웅장함으로 스스로 돋보이려는 건축물 대신 소박하고 아담하지만 자연과 사람을 존중하는 건축물을 꿈꾸었던 그가 왜 대한민국의 공공건축사를 새로 쓴 건축가로 평가받는지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는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남겼다. 우리지역은 특히 그가 공공건축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공간들이 많이 있다. 정읍기적의 도서관, 김제지평선중학교도 그렇지만 1996년부터 10년여 동안 자신의 철학을 모두 쏟아 작업했던 무주 프로젝트로 태어난 30여개 공공건축물은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지금은 천 원짜리 목욕탕으로 전국적인 이름을 알린 안성면주민자치센터, 무주공설운동장의 등나무 스탠드, 세상에서 가장 밝은 납골당이 자리한 추모의집 등 무주 곳곳에 숨어있는 정기용의 건축물은 그 자체로 무주군의 큰 자산이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적지 않은 건축물의 원형이 훼손되었거나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정기용의 건축물을 보기위해 지역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정작 무주에서는 그들 공공건축물의 가치를 소홀히 여겨 남의 것처럼 밀쳐두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