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도발적 제목의 책 저자로 유명한 김정운(50)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은 '재미학 전도사'다.
'재미 있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재미 있게 사는 방법을 연구한다.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도 결국 재미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파한다.
명지대에서 여가경영학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가르쳤지만 올해 교수직을 사직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문화심리학)를 받고 귀국해 한동안 백수생활 하다 어렵게 얻은 교수직을 때려 치운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란다. 용기가 가상하다.
한국은 일 많이 하기로 유명한 나라다. 2010년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93시간이다. OECD 국가중 1위다. OECD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은 1749시간인데 선진국의 노동시간은 대부분 평균치 이하다. 일 많이 한다는 일본도 1733시간 밖에 안된다. 1419시간에 불과한 독일은 적게 일하면서도 대부분의 산업이 세계적 경쟁우위를 보인다. 이런 걸 보면 일의 양이 결코 생산성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과거엔 일 많이 하는 게 자랑이었지만 이젠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다. 재미 있게 살고, 사람답게 사는 방법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최근 등장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정치 슬로건에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지친 삶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일 것이다. 얼마전 국회 강동원 의원(통합진보당=남원 순창)이 '야근방지특별법'('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맥락이다.
김정운 소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은 열심히 하는데 일 이외의 영역을 어떻게 경영할 지에 대해선 아무 의식이 없다."고 지적한다. 놀 줄도, 쉴 줄도 모르고 여가문화를 즐기지도 못한다는 얘기다. 휴일도 잊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일에 치여 산 사람이라면 여가를 재밌게 경영할 리 만무하다.
노동시간 세계 1위라면 세계인의 눈에는 죽어라 일만 하는 나라로 비칠 것이다. 창피할 노릇이다. 노동도 창의성과 자발성이 있는 노동이라야 경쟁력이 있다. 창의성과 자발성은 놀고 쉬면서 에너지를 재충전할 때 극대화된다. 쉴 틈이 없는데 어디에서 창의력이 나오겠는가.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 등 선진국들의 노동시간이 짧은 건 휴가일수가 많고 법정 휴가를 다 찾아먹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재임중 여름휴가를 30일이나 썼다. 브라운 영국 총리와 메르켈 독일 총리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통령의 법정 휴가일수는 21일이다. 이걸 다 쓰면서 여름휴가를 보낸다면 아마 따가운 눈총을 받을 것이다. 도지사나 시장 군수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공무원들도 법정휴가를 다 쓰지 않는다. 상사 눈치 때문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조그마한 사기업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사장이나 직장 상사가 휴가를 가지 않고 출근하는 마당에 직원들이 휴가 일수를 다 찾아 먹기란 웬만한 배짱이 아니고서는 어렵다. 그런들 왕짜증만 날뿐 일 해 봤자 생산성도 오르지 않는다. 휴가 가지 않고 일 하는 게 회사에 '충성한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는 중간 간부들도 있다. 직원들이 손가락질 하는 줄도 모르면서….
장마가 걷히고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휴가를 포기하거나 다 쓰지 않는 건 낡은 생각이다. 행정기관, 사회단체, 기업의 장(長) 또는 조직의 높은 자리에 있는 인사들부터 휴가 제대로 쓰기에 솔선해 보자. 그래야 소속 구성원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근로자들도 '놀 권리' '쉴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 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