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의 여름 산 공부

'노스승과 어린 제자들이 마주 앉았다. 삼복더위, 염천의 한낮 기세는 맹렬했다. 자리 펴고 앉은 지 금세,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물이 되어 줄줄 흘러내렸다. 그것도 잠시, '따딱 꿍!' 스승의 매서운 북장단에 제자들은 허리 곧추 펴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자칫 다른 생각에 마음 두다가는 장단을 놓치기 십상이다. 눈과 마음을 온통 스승의 눈과 입과 손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으니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여러해 전 고 오정숙 명창과 제자들의 여름 산 공부 현장을 찾았을 때 만난 풍경이다.

 

판소리 수련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목소리를 얻는,'득음'에 이르는 것과 자기 나름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판소리에 좋은 목소리를 얻는다는 것은 좋은 음색과 판소리에 필요한 모든 표현 기능을 완전하게 익힌다는 것을 뜻한다. 거기에 진정한 명창이라면 좋은 목소리에 자기 나름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런데 득음과 창조적 변이형을 만드는 일은 스승에게 배우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들여다보면 한 시대 이름을 날렸던 수많은 명창들의 명성 뒤에는 한결같이 고행의 수련과정이 있다. 판소리에 적합한 목과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얻기 위한 수행은 고통을 스스로 얻고 또한 고통을 스스로 극복하는 시간의 연속 위에서 이루어진다. 득음을 향해 온전히 소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옛 사람들은 '백일공부'라 이름 붙였다.'백'이라는 숫자는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온'의 의미다. 다시 말하자면 '전부''모두''완전함 '을 뜻한다. 백일공부는 '100'이라는 숫자보다'완전함을 향한 공부'에 그 온전한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옛 소리꾼들의 '백일공부'를 오늘로 치자면 '산 공부'와 같다. 기간이나 형식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졌지만 소리를 얻기 위해 집중적으로 몰두하는 수련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명창들은 예나 지금이나 '산 공부'를 하기에는 한여름을 제격으로 친다. 올해도 더위를 몰고 온 7월의 초입부터 소리꾼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으로 절집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어떤 소리꾼은 제자들을 동행해 들어갔을 것이고, 어떤 소리꾼은 자기 수련을 위해 홀로 들어갔을 것이다.

 

소리꾼들의 여름은 시작도 끝도 분명하다. 그러나 득음의 경지에 이르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고행의 과정을 비로소 마주하는 득음의 경지는 그래서 더 숭고한 예술의 세계다. 변하지 않는 판소리의 가치에 우리가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