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창극 준비하는 '판소리 가족'

최승희 명창 '母系 3대' 전주문화재단 '해마달'서 호흡 / 모보경·김하은, 월매·춘향으로…최 명창 무대 뒤 지도

   
▲ 판소리 3대가 뭉쳤다. 전주문화재단의 '해 같은 마패를 달 같이 들어메고'을 준비하는 (앞쪽부터) 최승희 명창, 그의 딸 모보경씨, 최 명창의 손녀 김하은 양이다.
 

2년 전 최승희(75·전북무형문화재) 명창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낀 첫 인상은 당당함과 왜소함이었다. 소리를 할 때면 무대를 꽉 채우는, 예술적인 기량이나 감성에서는 절대로 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쏙 빼닮은 딸 모보경(48·전북도립국악원 교수)씨 역시 정정렬제 춘향가를 잇는 '작은 거인'. 두 모녀의 컴플렉스는 모 명창의 딸 김하은(16·국립전통예술고 1년)양에게서 극복됐다.

 

보기 드물게 모계 3대가 판소리를 하는 이들을 최근 전주문화재단(이사장 유광찬)의 마당 창극'해 같은 마패를 달같이 들어 메고'에서 만났다. 정정렬제 춘향가가 풀어지는 이 창극에서 모씨와 김양이 맡은 역은 월매와 춘향이다.

 

"정정렬제 '춘향가'는 이별헐 때, 향단이한테 음식 들려가지고 오리정에 나가, 그 경치 좋은 데서, 잔디밭에 앉아 한 잔 잡수시오 하면서 이별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참말로 좋아요. 춘향모 몰래 첫날밤 지낸 것도 그렇고. 그런 사랑 우리도 한 번 해봤었으면. 우리는 뭣 했는가 몰라."

 

소녀 같은 감성이 남아 있는 최 명창을 보노라면 목숨 걸고 이겨낸 아버지의 반대, 소릿길을 걸으면서 겪어야 했던 지독한 가난과 설움, 두 번의 위암 수술은 쉬이 연상되지 않는다. 그의 소릿길은 장애물 투성이였으나, 거칠고 상처 많은 '매화 등걸'에 피어난 매화처럼 아름답다. 굽고 휘어진 매화나무처럼 소리 역시 변화가 많고 굴곡이 심하면서도 힘차다.

 

유난히 어렵기로 소문난 정정렬제를 이어온 덕분에 별다른 제자가 없었던 최 명창은 모씨가 다시 소리로 돌아왔을 때 반겼다. 어려서부터 소리를 배우던 큰 딸이 한 때 대중 가수로 외도한 것도 어찌 보면 최 명창이 "소릿길은 너무너무 어렵다. 그 놈을 다 연마하자면 고생스럽다"고 반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양 역시 모씨의 끼를 물려받아 지난해 'K팝스타'에 출연해 탈락한 덕분에 소리에 정진하게 된 케이스. 김양은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보면서 판소리의 길이 좁고 인정받기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고 어른스레 답변했다.

 

전승예술에서는 제자를 두는 것이 인생살이에서 자식을 두는 것과 같다. 자식이 없으면 대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최 명창이 제자인 딸과 손녀딸에게 쏟는 애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모씨는 "덥기도 하거니와 휴가철이라 관람객이 적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많았지만, 객석이 꽉 찰 정도로 인기"라면서 "매번 애드립이 달라질 만큼 객석의 반응이 뜨거워 고생하면서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무대 뒤에서 모녀를 지켜보며 이런저런 훈수를 놓던 최 명창은 마치 자신이 소리를 하는 것처럼 긴장하고, 좋아하고, 그리고 안쓰러워했다.

 

△ 전주문화재단의 '해 같은 마패를 달 같이 들어메고' = 8월18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전주소리문화관. 문의 063)283-0223. www.jjcf.or.kr 일반 2만원, 청소년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