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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부터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운봉고원에 묻힌 가야무사'라는 주제의 발굴유물 특별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남원 월산리 발굴유물을 중심으로 운봉고원의 가야이야기를 잘 담아냈다. 가야계 무덤에서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낸 중국제 청자인 천계호(天鷄壺)와 쇠로 만든 자루솥을 비롯하여 당시 보물급 유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500년 전 운봉고원에 묻힌 가야무사가 담아낸 운봉고원은 한마디로 '철의 왕국'이다. 우리나라에서 철불의 첫 장을 열어서 '철불의 본향'으로 평가받고 있는 남원 실상사도 운봉고원을 지킨 호국사찰이다.
최근에 지리산 국립공원 내 달궁계곡에서 야철지가 발견됐다. 마한 왕의 달궁터를 중심으로 남쪽 하점골과 남서쪽 봉산골이 여기에 해당된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겨 철 생산유적을 찾는데 고고학자들의 도전과 끈기가 요구됐다. 당시에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제련로가 있었던 곳에는 5cm 내외의 크기로 잘게 부순 철광석이 봉분처럼 쌓여있다. 철광석의 채광부터 숯을 가지고 철광석을 환원시켜 철을 추출해 내는 제철공정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 막 문을 연 철의 유적공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유적의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에 가까워 대자연의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백두대간의 만복대에서 바래봉까지 이어진 산줄기 서쪽에도 3개소의 야철지가 있다. 운봉읍에서 지방도를 따라 정령치로 향하면 선유폭포에 도달하는데, 그 부근에 쇠똥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 남원 고기리 야철지로 운봉고원에서 발견된 야철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세걸산 서쪽 금새암골에도 수철리 야철지가 있는데, 수철리라는 마을의 지명도 철 생산유적에서 유래됐다. 해마다 5월 철쭉제로 유명한 바래봉 서쪽 골짜기에도 철광석을 볼록하게 쌓아놓은 산덕리 야철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야철지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운봉고원은 또 다른 야철지가 더 발견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2100년 전 마한의 왕이 진한의 전쟁을 피해 달궁계곡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곳에서 70년 넘게 나라를 다스렸다. 100여 기의 말무덤과 가야계 고총으로 상징되는 운봉가야는 150년 넘게 가야왕국으로 발전했다. 1500년 전 백제 왕이 보낸 천계호와 쇠로 만든 자루솥도 운봉고원 내 가야계 고총에서 출토됐다. 아직까지 김해의 금관가야나 고령의 대가야에서 출토되지 않은 최고의 위세품으로 운봉가야의 역사적인 위상을 최고로 높였다. 실상사 철조여래좌상은 운봉고원이 철의 생산부터 주조기술까지 응축된 당시 철의 테크노밸리였음을 웅변해 주었다.
인류의 역사 발전에 철의 공헌도가 매우 높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고대국가를 출현시켰고, 대가야가 후기 가야의 맹주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철의 힘이다. 운봉고원을 무대로 찬란히 꽃피웠던 마한 왕의 달궁터도, 운봉가야의 눈부신 발전상도, 우리나라의 철불이 실상사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역사적인 배경도, 모두 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봉고원 내 철 생산유적의 분포양상과 그 연대를 밝히기 위한 한 차례의 학술조사도 추진되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운봉고원의 야철지는 전북과 전북인이 꼭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다. 그럴 때 운봉고원이 '철의 왕국'으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