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서지 않지만 추억이 서려있는 곳

도내 유명 간이역

이제는 더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그러나 간이역은 전 세계적으로 색다른 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도 간이역이었고,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 역시 역을 개축해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을 비롯한 인상파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이 됐다.

 

국내에서도 강원도 원주 반곡역은 화가 박명수씨가 미술관으로 조성한 곳이다. 철도청과 한국미술협회 등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끈질기게 설득해 2009년 10월 역 대합실에 비교적 아담하고 깨끔한 '반곡역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이곳은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소개 돼 꽤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전북에는 호남선과 전라선, 장항선 등 3개 노선과 40개 기차역이 있다. 이 가운데 여객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역은 무려 29곳에 이른다. 이용객 수에 차이는 있겠지만 서민들이 몰렸던 도내 기차역의 70%는 발길이 끊기고 있다. 정읍 초강역과 남원 옹정역, 익산 오산리역을 비롯한 5곳은 역 건물마저 없고, 22곳은 역무원마저 배치되지 않은 상황. 여객열차 중 무궁화호가 서는 역은 12곳, 새마을호는 7곳, KTX는 익산과 김제, 정읍, 전주, 남원 등 5곳에서만 정차한다.

   
▲ 익산 춘포역

■ 가장 오래된 역 '익산 춘포역'

 

슬레이트를 얹은 목조건물로 단순해보이기까지 한 춘포역은 일제강점기 개통 당시 '대장역'으로 불리다가 1996년 이름이 변경됐다. 2007년 6월 기준으로 여객과 화물을 취급하지 않기에 이제는 기차가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곳이 됐다. 논란이 있기는 해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210호로 지정돼 있다. 현재 지자체가 코레일로부터 무상 임대를 받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사업이 추진 중이다.

   
▲ 군산 임피역

■ 수탈 역사 간직 '군산 임피역'

 

군산 임피역사(등록문화재 제208호)는 비교적 옛 건물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임피역의 건립 시기는 1912년, 1921년, 1936년 등 기록이 서로 달라 명확치 않다.

 

아픈 수탈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간이역 임피역. 군산 임피역사는 일제 강점기 전북의 농산물을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가 된 군산선의 역사 가운데 하나다. 임피역은 당시 농촌의 소규모 간이역사의 건축양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며, 원형 또한 잘 보존 돼 있어 건축사·철도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 남원 서도역

■ 소설 혼불 무대 '남원 서도역'

 

소설 '혼불'의 무대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옛 서도역. 2008년부터 기차가 서지 않는다. 옛 서도역은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주인공인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올 때 기차에서 내리던 곳이며 강모가 전주로 학교 다닐때 이용하던 장소다.

 

옛 시골역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공간은 지난 2002년 전라선 철도 개량사업 당시 인근에 새 역사가 건립되고 철로가 이설되면서 철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지역주민과 사회단체의 보존 건의를 남원시가 받아들이면서 영상촬영장으로 거듭났다. 혼불 문학관 길목에 위치한 이 공간에는 옛 역사와 관사, 철길, 신호기 등이 1932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돼 있다. 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자그마한 역사를 지나 완행열차가 곧 도착할 것만 같은 플랫폼에 서면 곧바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김진아 문화전문시민(익산문화재단 문화예술사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