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인쇄와 출판의 중심지였다. 전주에서 출판한 책을 완판본(完板本)이라고 한다. 완산은 전주의 또 다른 이름이며, 책을 찍어낸 목판에 지명을 붙일 만큼 유명하였다. 전주는 조선시대에 전라감영이 설치되어 행정과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인근에서 질 좋은 한지가 많이 생산되어 완판본의 화려한 시대가 열렸다.
조선 시대에는 다량으로 책을 만들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였다. 중앙에서 모든 책을 인쇄할 수 없었기에 각 도의 감영에서 목판본을 새기게 하였다. 전라감영에서는 세종 10년(1428)에 '시경대전'(詩經大全), 세종 11년(1429)에 '예기대전'(禮記大全) 등을 목판본으로 다시 새겼다. 이후 총 60여 종의 책이 간행되었고, 이 책들에는 '완영'에서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지방의 감영에서도 책을 찍어냈지만 책판이 남아서 전하는 것은 전라감영의 것이 유일하며, 5000여 점의 목판이 남아있다.
다량으로 책을 찍어냈다 하더라도 책은 귀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관청에서 찍어낸 책들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민간에서도 장사할 목적으로 실용적인 책들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이 방각본(坊刻本)이다. 특히 태인에서 손기조가 간행한 '명심보감초'(明心寶鑑抄)(1664), 전이채와 박치유가 간행한 '상설고문진보대전'(詳說古文眞寶大全)(1676) 등은 가장 이른 시기의 방각본이다. 전주에서는 1810년에 하경룡이 간행한 '칠서'(七書)와 '칠서언해'(七書諺解)가 많이 보급되었다.
완판본이라고 하면 좁게는 전주에서 간행된 목판본의 한글 소설을 말하기도 한다. 1823년 최초의 목판 한글 소설인 '별월봉긔'가 출판된 이후 다양한 한글 소설이 출판되었다. 판소리계 소설로 '춘향전','심청전','심청가','화룡도','토별가' 등이 있고, '초한전','구운몽','삼국지' 등이 출판됐으며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완판본 한글소설은 딱지본이라는 새로운 책에 밀려 더 이상 인쇄되지 않았고, 책판들은 또 다른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고 있다. 전주고보를 나온 윤규섭(尹圭涉)이 '문장'(文章) 2권2호(1940)에 쓴 '완판'(完板)이라는 글에 양씨가 운영하던 양책방(梁冊房)의 양승곤(梁承坤)으로부터 책판을 받아왔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1940년 3월 2일자 동아일보에는 '귀중한 한글 소설목판 전주 서계서포로부터 400여판을 옮기어 대동출판사, 영구 책임 보관'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1939년 말에 전주에 있던 완판본의 책판들이 서울로 옮겨져 간 것이다. 이 책판들은 전쟁을 거치면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 전주의 자랑이 이제 이야기로만 남게 되었지만 그 일부라도 다시 전주에 돌아오기를 기원해본다.
/ 이문현(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