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인(藝人)들 이야기

전북도립국악원에서 펴낸 전통예인 구술사에는 재미있는 대목들이 많다. 우선 판소리에서의 책거리. 판소리 전수자들은 스승에게 판소리 한 바탕을 다 배우고 나면 그 대가를 치렀다. 금으로 반지나 팔찌를 해 주기도 하고 옷을 맞춰 주기도 했는데 그것을 '책거리'라 했다. 마치 서당에서 책을 다 뗐을 때 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선생님, 받으십시오"하고 드리면 "뭘 이렇게 많이 했나!" 그러면서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 많지 않아요" 그러면 스승은 "자네는 명창됐네!"라고 화답했다.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하고 스승의 격려를 받는 것이다.

 

또 하나는 판소리 전수자에게 빠질 수 없는 똥물 얘기. 소리 연습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목이 뒤집어(꽉 쉬어)졌다. 그래서 삭신이 쑤시고 온 몸에 어혈이 생겨 부었을 때 똥물이 최고다. 똥물은 남자 똥만 받아 가지고 3-4개월 삭히는데(발효), 그렇게 되면 똥 건더기는 없어지고 말갛게 된다. 그 국물을 채에 걸러, 대접에 받아 마신다. 마늘과 생강으로 입가심을 하면 끝이다. 똥물은 생똥이나 삭힌 것이나 냄새나기는 매 한가지며 오히려 삭힌 게 냄새가 더 난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인 이일주 선생의 증언이다.

 

고법 보유자인 이성근 선생은 북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북을 칠라믄 소리를 알아야 한다"면서 "가사가 힘이 부쳐서 까라질 적에는 강하게 해 주고, 소리 가사가 맥힐라고 허믄 북으로 메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소리 보필을 잘 해주는 게 명고수(名鼓手)란다.

 

부안 농악(상쇠) 보유자인 나금추 선생은 농악단 이전 국극단으로 전국 공연을 다닐 때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자신이 처녀였던 자유당 시절, 묵고 있는 여관에 깡패들이 간혹 찾아 오곤 했다. 마루에다 큰 칼을 딱 꽂아 놓고 꽹과리 치는 아가씨를 내놓으라고 을러댔다. 그러면 새벽에 보따리를 싸서 도망을 쳤다. 결국 단장만 곤욕을 치러야 했다.

 

호남 살풀이춤(동초수건춤) 보유자인 최선은 총각때 "여자냐? 남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다 중매로 늦게 결혼을 했는데 신석정 시인이 주례를 섰다. 지금은 없어진 봉래원예식장에서다. 신혼살림은 전주 중앙동 이시계점(이창호 국수의 집) 3층에 차렸다. 무더위 속에 자칫 사라질 뻔한 얘기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상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