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노 대표가 걸어 온 삶의 궤적은 결코 장밋빛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 가정주부로서, 초등학교 교사로서 30년 가까이 평범한 삶을 살아왔지만 1990년 10월 갑작스런 암 선고와 함께 투병생활로 천직으로 여겼던 교직을 떠나야만 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94년 1월 부부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남편을 잃었고 중상을 당한 자신도 평생 장애를 안고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남편이 운영하던 석재업체를 떠맡아 회사를 추스려야만 했다.
회사가 안정될 무렵인 1997년 IMF 한파가 몰아친데다 철석같이 믿었던 지인으로보터 수십 억원에 달하는 사기피해를 당하면서 회사는 회생불능상태로 빠졌다. 빚 독촉에 시달리자 결국 유서를 쓰고 2차례나 극단적인 결심을 했지만 자녀들 때문에 포기하고 다시금 '어머니의 힘'으로 일어섰다. 수차례 읍소와 설득을 통해 은행의 배려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한편 품질 고급화와 안정적인 판로 확보에 주력했다. 석재품에 대한 Q마크와 ISO 인증을 획득하는 한편 야광경계석으로 특허와 신용신안 등록도 완료하고 관급 납품에 유리한 여건을 마련하면서 장등석재를 전국 최대 석재기업으로 키웠다. 지난해 3월 뇌종양으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해 현업에 복귀했다. 국내 석재산업 전반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지금은 회사 규모를 대폭 줄이고 내실경영을 도모하고 있다.
1943년 익산 태생으로 이리여중과 전주사범을 졸업하고 군산 금광초등학교에서 교직에 첫 발을 대디뎠다. 이리초등학교와 함열초등학교 황등초등학교 등지에서 29년간 교직에 몸담았다가 1990년 퇴직, 1994년 장등석재 대표로 취임했다. 1999년 7월 여성기업인협회 전북지부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명예회장을 거쳐 지금은 협회 고문으로 활동중이다. 교사시절부터 어려운 학생들을 남몰래 도와 준 공적이 알려져 전주지방검사장 표창을 받았고 기업경영과 여성기업인협회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자원부장관과 건설부장관 표창도 받았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정직과 성실을 가훈과 사훈(社訓)으로 삼아 자녀와 직원들에게 직접 본을 보이며 특히 언행을 중시해 몸가짐 마음가짐 행동가짐을 항상 일깨우고 있다. 장남(41세)은 대전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큰딸(45세) 부부는 익산에서 재활의학병원을 경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