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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닮아간다고 한다. 몸은 마음을 따라가는지 마음을 나누다 보면 말씨와 생각이 비슷해지고 얼굴도 닮아 간다. 닮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부부가 닮은 다는 것은 잘 살아왔다는 뜻이다.
우리 부부는 생김새와 성격이 아주 달랐어도 오순도순 잘 살았다. 흔히들 성격이 같은 사람끼리 만나면 다투기도 잘하고 서로 잘 부딪히기 때문에 이혼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성격이 다르면 이쪽이 화나면 저쪽이 참기 때문에 잘 산단다. 그래서일까, 거짓말처럼 우리는 40년이 넘게 살았어도 싸움을 하지 않고 살았다. 우리 부부는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날 죽자고 약속했지만, 남편이 먼저 갔다.
남편이 병석에 있을 때의 일이다. 간호하는 내가 안쓰러운지 "여보 내가 나으면 업어줄게!" 하고서는 업어주기는커녕 잘 살아 달라는 말 한마디 없이 눈을 감은지 어언 12년이 넘었다. 우리는 잉꼬부부여서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샀다. 조카들이며 젊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살아가고자 했다. 남편은 점잖고 말이 없으며 마음씨가 너그러웠다. 조금은 야무지지 못해 내가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남의 말을 존중하고 우리가 손해 보며 살자고 했다.
우리는 서로 존중했다. 내가 없을 때 어디서 음식이 들어오면 엄마 오시면 먹자고 하든지 아니면 엄마 먹을 것을 먼저 남겨놓고 먹었다. 나도 그에 못지않게 그를 우리 집 대통령으로 대우했다. 아버지 퇴근 시간이 되면 집안을 정돈하고 깍듯이 "다녀오셨습니까?"라고 인사를 하도록 가르쳤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편안히 쉬도록 했다. 그뿐인가, 집안일은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하고 좋은 일만 보고했다.
우리가 평생 수없이 이사했지만 남편은 출근하고 이사를 다 하면 그때 집이 어디인지 알아서 찾아왔다. 못 하나 박지 않고 거들어 주지 않아도 나는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았다. 좀 더 같이 오래 살았으면 좋았을 걸, 나만 혼자 살아서 이렇게 호강하고 누릴 것 다 누리며 애들의 효를 받으니 미안하다.
남편이 부인을 '여보'(如-같을 여 寶-보배 보)라고 부르는 것은 보배 같은 부인이란 뜻이고, 여자가 남편을 '당신'(當- 마땅할 당 身-몸신)이라 부르는 것은 마땅히 나는 당신과 같은 몸이라는 뜻이다. 부부의 이상은 같은 날 죽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 죽음까지 공유할 만큼 완전한 사랑이 있을까. 해로동혈(偕老同穴)이란 말처럼 함께 늙고 죽어 한 무덤에 묻히자고 다짐하지만, 같이 자살하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다.
동양에서는 함께 늙고 죽어 한 무덤에 묻히자는 사랑의 맹세를 많이 했다. 부부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아플 때나 힘들 때, 즐거울 때나 슬플 때도 같이 사는 것이 부부다. 자라온 환경과 가풍, 타고난 성격도 다른 남녀가 고락을 함께한다는 것은 아주 본받을 만하다. 부부는 아주 조금씩 닮아 가는 법이다. 부부로 살다보면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심지어는 말투와 얼굴까지 비슷해진다.
나는 전라도 남쪽 임실 사람이고 남편은 경상도에 가까운 무주사람이다. 먹는 것부터가 달랐다. 그곳은 바다가 먼 곳이라 생선을 많이 접하지 못해 잘 먹지 못했고, 나는 여수가 가까워 싱싱한 생선을 먹고 자랐다. 또 시집식구는 밀가루를 좋아해서 국수를 별미처럼 잘 먹었다. 가루 것을 싫어했던 나도 잘 먹게 되고, 말투와 행동, 식습관도 닮아가는 것이었다. 사랑이라는 양념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시집가서는 왜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고, 고향이 그리운지 저녁이 되면 고향 하늘만 쳐다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모든 것이 낯설고 물 설며 어렵고 힘든 시집살이였다. 하지만 남편 하나 보고 시집을 와서 사랑의 약을 먹으며 사는 것이 부부가 아닌가?
※ 수필가 이강애씨는 2007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