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인의(仁義)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것을 뜻한다.
한자의 어질 인(仁)은 인(人)에 이(二)를 더해 만들어졌다. 우리가 서로 의지하며 어울려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다시 말해 타인에 대한 자비와 사랑, 동정심의 발로라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기록한 논어 위령공편에 "뜻 있는 사람과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을 해치지 않고 목숨을 바쳐 인을 이룬다"는 구절이 있다.
의협심이 강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나 인덕을 갖춘 사람은 반드시 목숨을 바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통이나 목숨을 내놓는 것을 두렵다 아니하고 이웃에 봉사하거나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구하는 행동을 결코 마다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인간에게 있어 목숨보다 소중한 게 없다. 하지만 그 목숨을 남을 위해 던지는 희생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정신적 가치다. 생(生)과 사(死)를 초월한 그 가치는 영원하기에 더욱 그렇다.
지난 16일 우리 사회에 아직도 많은 희망이 있음을 말해 주는 안타까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이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영준 군(18)이 친구들과 어울려 물놀이를 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가는 초등학생들을 구한 뒤 자신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두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주저없이 급류에 뛰어들었다가 끝내 숨을 거둔 이 군의 고귀한 희생이야말로 살신성인, 그 자체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은 이 군의 사연은 정말 그 어떤 향기보다 아름답고 가슴 찡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세상에게 '말보다 실천'이라는 '희망의 등불'을 켜준채 너무도 짧디 짧은 생을 마감했다.
생명이 위태로운 돌발사고에서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 정말 실천하기 어려운 일인데도 말이다.
아울러 이 군은 남의 불행을 외면하지 말라는 귀중한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남겼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말해 준 이 군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용기를 이어가는 것이 그에 대해 살아 숨쉬는 우리들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본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각박한 세태를 일깨우는 '빛'이나 '소금'과도 같은 이 군의 고귀한 희생에 다시한번 머리숙여 깊은 애도를 표하고 명복을 빌고 또 빈다.
덧붙여 자손이 부모에 앞서 죽는 것을 참척(慘慽)이라 한다.
실로 슬프고 참담하기 이를데 없다는 의미다.
한무숙의 소설 '만남'에는 "십오 세에 장가들어 아들 여섯 딸 셋, 푸짐하게 했지만 딸 하나 아들 셋, 눈앞에서 참척을 당해야 했다."며 아들의 죽음을 겪은 실존적 체험을 그렸다.
효경(孝經)에는 "효(孝)의 마침은 자식이 잘 되고 부모보다 늦게 죽는 것"이라며 부모 앞에 죽는 것을 가장 큰 불효라 여겼다.
졸지에 이 군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어찌 그 누가 필설로 다할 수 있을까.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 참척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군의 부모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