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애그플래이션

"옥수수에 붉은 솔이 늘어진 것이 꼭 등에 업힌 어린아이와 같다. 언제 보아도 그것이 어린애 같았다. 옥수숫대는 어린 것이 잠이 깰세라 하고 고이고이 업고 있었다." 이광수의 수필 '여름의 유머(일명 소가 웃는다)'에 나오는 대목이다. 작가 눈에는 옥수숫대에 옥수수가 열린 모습이 꼭 등에 업힌 어린애 같아 우스웠던 모양이다.

 

"옥수수밭은 일대 관병식(觀兵式)입니다. 바람이 불면 갑주(甲胄) 부딪치는 소리가 우수수 납니다." 이상의 '산촌여정(山村餘情)'의 한 대목으로 옥수숫대가 가지런히 서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밭에서 금방 꺾어 온 옥수수를 쪄서 치열(齒列)처럼 꼭꼭 박혀있는 알갱이를 씹는 맛이 그만이다. 또 방 안팎에 매달아 말린 옥수수 알갱이를 따서 튀밥을 튀기면 궁금한 입을 막기에 딱 좋다.

 

옥수수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인류가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500년 정도로 짧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해 들어왔으며 중국음의 위수수(玉蜀黍)에서 우리식 발음인 옥수수가 되었다. 구슬같이 노란 수수라는 뜻이다. 사투리 강냉이는 '강남에서 온 것'이라는 말이 바뀐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간식으로 애용되는 옥수수가 이제 세계 곡물시장을 호령하는 왕자가 되었다. 벼, 밀과 함께 세계 3대 식량작물로 등극한 것이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1억5900만㏊에서 연간 8억1900만톤(2009년 기준)을 생산해 밀(6억8600만톤)과 쌀(6억8500만톤)보다 20%나 더 많다. 식품 사슬의 정점에 위치하는 셈이다. 슈퍼마켓 진열상품의 75%에 옥수수가 들어 있고, 연료와 약품, 비누, 연탄, 타이어, 잉크 등 다방면에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곡물 생산량의 60%가 옥수수(자급률 0.8%)다. 수입된 옥수수의 75%가 가축사료, 21%가 가공용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세계 옥수수의 40%를 생산하는 미국이 올해 가뭄으로 흉작이 들면서 불과 2달 사이에 가격이 50%가량 급등했다. 더구나 세계 곡창지대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도 소출이 20% 이상 감소했다. 사룟값이 오르면 소 돼지 닭고기 값이 오르고, 과자 음료수 등 가공식품 가격도 오를 수에 없다. 옥수수로 인한 애그플레이션(곡물 가격발 인플레이션)이 세계 식량 위기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의 현실이 걱정이다. 조상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