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기심

이종성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몇 해 전 미국의 AP통신이 시장조사기관인 입소스(IPSOS)와 공동으로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10개국 성인을 대상으로 '국가별 일상생활 스트레스 정도'를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국민의 81%가 일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해 10개국 중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압축성장으로 경제발전은 이루었으나 대다수의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성장가도를 걷고 있는 나라,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에서 우리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언뜻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바꿔 말해서 한국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가 반드시 '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 국민 스스로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을 다른 사회 구성원과 끊임없이 비교해 남을 이기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어려서부터는 치열한 대학입시 준비에 혼신을 다하고, 커서는 좁은 취업문을 뚫고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과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국인이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아닌 남이 정해 놓은 성공의 기준에 맞춰 살다 보면 인간은 언제나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가진 자원과 능력의 한계가 있기에 나름대로 자기만족과 행복에 도달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참다운 행복을 느끼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며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고 베푸는 것은 세상 어디에서나 행복한 사람들의 일이다. 나눔과 베풂의 행위는 가진 것이 없어도 삶의 의미와 행복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1위에 꼽힌 나라는 의외로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탄'이란 국가다. 부탄 국민들은 물질의 풍요보다 정신의 풍요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다. 또 이 나라의 지도자는 육체가 필요로 하는 물질과 정신이 필요로 하는 심리적 요인이 조화된 삶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이웃들과 더불어 깊은 유대감을 나누며 살았던 마을 공동체 문화가 존재했다. 경조사 때는 누구 할 것 없이 서로 도와 어려운 일을 함께 해 나갔고 두레, 품앗이 등 협동과 지혜를 주고받았던 민족이었다. 이런 옛 정신이 우리 정서에 남아있기에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도 큰 재난과 재해가 있을 때마다 똘똘 뭉쳐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지난해 정읍 수해피해 때도 전국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움으로 빠른 복구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올해도 군산지역 등 폭우와 태풍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민관이 힘을 합쳐 어려움에 처한 수재민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자원봉사와 같은 재능나눔은 타인을 위한 마음, '이타심'에서 시작하지만 그 결론은 언제나 나를 위한 행복, '아름다운 이기심'으로 끝맺는다. 나희덕님의 시「속리산에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산다는 일은 /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높고 빠른 성장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과 진보는 다른 목표들과 함께 추구될 때만이 그 의미가 있다. 더 깊은 나눔이 그 충분조건인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통해 슬픔은 나눔으로 작아지고 기쁨은 나눔으로 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