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집에서 전화가 왔다. "영산댁, 오늘 사과즙 좀 내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뭔가를 할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마을에 있는 사과가공시설로 할머니들이 모이셨다. 할머니들께서는 손에 뭔가를 들고 오신다. 사과를 다듬기 위해 도구와 즙을 내리는데 필요한 용품이다. 주인이 정신없을 것 같아 도구들을 준비해 오신 것이다. 어르신들께서는 참 현명하시다. 서로가 말 하지 않아도 이웃끼리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잘 안다. 사과즙을 짜기 위해서는 씻기, 분쇄하기, 짜기, 멸균처리, 포장 등 분업을 해야 한다. 사과를 실은 화물차가 들어온다. 입이 '쩍'하고 벌어진다. 이렇게 많은 사과들이 떨어졌다니 또 한 번 놀란다. 여기저기에서 "에고 어쩔까나"하는 안쓰러운 목소리가 나온다.
사과즙 내리는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문제는 너무나 많은 양이다. 사과를 분쇄하는 공정이 가장 빠르게 진행된다. 가장 늦은 공정은 멸균처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의 균형을 맞출 수가 없다.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지나간다. 이때까지는 사과밭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가 핵심 이야기꺼리였다. 그런데 9시가 지나고 12시가 가까워지자 눈앞에 사과즙이 오고 간다. 이제부터는 많은 양의 사과즙을 어떻게 팔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다. 새벽 2시면 끝날 거라 예상했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공정을 마치는 시간이 4시20분. 가공된 사과즙 박스가 공장을 가득 메웠다. 일의 피곤함 보다는 사과즙을 어떻게 팔 것인가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세상에서 '농부'가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 생각했다. 오늘 새벽엔 마냥 행복할 수가 없다. 자연과 농부가 서로 잘 이겨내는 방법이 무엇일까. 밭 작물을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은 농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볼라벤 태풍 앞에서는 10년간 일궈온 사과나무가 싹쓸이 되고 말았다.
새벽에 바라본 농촌의 풍경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어제와 다른 오늘은 어젯밤에 짠 사과즙을 어떻게 판매할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방법은 바로 이웃 소비자께서 피해가 심한 농산물을 구매해 주는 것. 항상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시는 농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생사과즙에는 피로 회복에 유익한 사과산을 포함해 유기산이 함유되어 있는데 유기산은 몸에 쌓인 피로 물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사과잼이나 사과즙 등을 꾸준히 섭취해도 피로를 덜 느끼는 체질로 바뀔 수 있다. 사과 100g에는 칼륨이 100mg 이상 포함되어 몸 속에 든 염분을 배출시켜 고혈압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용성 식이섬유인 펙틴 성분도 콜레스테롤을 배출시키는 역할을 해 혈압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을 막아 준다고 한다. 사과즙 속에는 니코틴을 해독하여 폐기능을 강화해 주는 효능이 있어 흡연자들이 드시면 좋다.
'하늘모퉁이'발효식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