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죽지 않는 지구의 목숨 있다면 첫밥은 그곳에서 짓겠지
얼음이 있던 자리에 쌀을 안치고 불을 지피고 뜸을 들이고
무너진 세계는 밥심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다
북극해 스발바르섬 암반 속에 모신 씨앗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 가여운 것들은 최후의 보루가 되어 최면에 걸린 듯
긴 잠에 들었다 처음도 끝도 아닌 아찔한 높이를 견디고 있다
뜨거운 밥보다 더 뜨거운, 찬 밥 있다
손대지 말아야 할 밥이 먼 곳에 있으니
멸망을 염려하지 말라
오래된 가뭄에서 꺼내 듣는 빗방울 소리처럼
세상은 뒷주머니에 꼬깃꼬깃, 뛰는 심장 하나 접어 넣고 있다
*나혜경 시인은 92년 ‘문예한국’으로 등단. 시집 ‘무궁화, 너는 좋겠다’‘담쟁이덩굴의 독법’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