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기념일 제정 새국면 돌입

유족회, 정부에'3월5일'건의…관련단체·학계 대응 주목…기념재단 사무처장 입장 번복 싸고 내부갈등까지 불거져

▲ 지난 4월 25일 고창 무장읍성축제 대 열린 동학농민혁명118주년 무장기포 출정식.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을 둘러싼 논란이 전국 유족회의 동학농민혁명 특별법 공포일(3월5일)로 최근 정리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유족회 의견을 받아들여 특별법 공포일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지정할 지 여부와 함께 동학 관련 단체와 학계가 어떤 입장을 갖고 대응할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전국 유족회는 지난 10일 기념일 제정을 위한 대의원 온라인 투표를 실시한 결과 투표에 참여한 대의원 118명(전체 146명) 중 76명이 특별법 공포일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기념일 후보군으로는 △ 2004년 동학농민혁명 특별법 공포일(3월5일) △ 혁명 창의문을 발표한 고창 무장기포일(4월25일) △ 농민군이 최초로 승리한 정읍 황토현 전승일(5월11일) △ 전주 화약을 이끌어낸 전주성 점령일(5월31일)이 검토됐다. 유족회는 이를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3월5일을 기념일로 제정해줄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학계와 동학 관련 단체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학계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등은 "대부분 증손들이어서 당시 일이나 역사적 의미를 잘 모르는 유족회 주도로 여론 조사로 추진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 재단이 수십여 년간 연구해온 학계 의견을 무시하고 공개적 논의 절차를 거치려는 더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는 대목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기념일 제정 추진위원회 구성·여론조사 추진 등이 일부 단체 반대로 무산되자 당분간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 기념일 제정 추진 과정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의 필요성은 2004년 3월 동학농민혁명 관련 특별법을 공포하면서 제기됐다. 전국 관련 단체들은 회의를 통해 동학농민혁명 전공 연구자들에게 기념일 논의를 위임했다. 연구자들은 토론회를 거쳐 정리된 의견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명예회복 심의위원회'에 상정했다. 심의위원회는 2007년 1월 고창 무장기포일(4월25일)을 기념일로 의결했다. 무장기포일은 농민군이 정식으로 결의문을 발표하고 일부 지역이 아닌 전국적인 봉기를 선포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읍 단체 등이 반발하면서 기념일 제정이 무산됐다.

 

2010년 2월 특별법에 의거해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출범하면서 2011년 기념일 제정이 재논의됐다. 재단은 관련 단체 회의를 열어 '관련 연구논문 2편 이상 발표한 자'로 위원을 추천, '동학농민혁명기념일 제정 추진위원회'(23명)를 구성했다. 그러나 추진위원이 고창 무장기포일로 가닥을 잡자, 정읍 주민들이 회의장에 난입하는 등 반발해 또 다시 무산됐다.

 

그러다가 재단은 올해 5월 추진위원회 자동 폐기, 기념일 제정 관련 여론조사 설명회 등을 통보했다. 전국 17곳 단체 중 여론조사에 반대한 13곳 단체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야 할 기념일을 여론조사로 하는 게 가당키나 하느냐"고 거세게 반발했다.

 

△ 재단 "손 떼겠다"? 이사회 검토 안 거친 무책임한 입장 지적도

 

이용이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무처장은 14일 "재단이 기념일 제정을 주도하는 게 명분에는 맞을 수 있으나, 반대 단체의 중상 모략이 계속 돼 결론이 나지 않고 있어 당분간 상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영위원회가 기념일 지정을 잠정 보류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재단을 대표하는 사무처장이 "누가 기념일 제정을 추진하든 일체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잠정 보류를 돌려 말한 것"이라고 입장을 번복하면서 재단 안팎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무처장이 유족회에 의한 기념일 제정을 내년 연임을 위한 성과물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기념일 제정 관련한 모든 논란에서 침묵해왔던 신순철 재단 이사(원광대 교학부총장)는 "재단 이사회가 기념일 지정과 관련한 입장을 잠정 보류했을 뿐, 지정하겠다는 것은 분명한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학계는 고창 무장기포일로 거의 합의가 이뤄진 상황"이라면서 "정읍의 과도한 제동은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건 분들의 정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이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념일 제정은 역사적 사건에 근거해왔다"고 전제하면서 "고부 봉기는 고부 고을에 한정된 봉기로 조선 후기 민란의 연장선이며, 고부 봉기가 강압적으로 수습되는 과정에서 고을을 넘어 전국의 농민들이 일어난 고창 무장기포일을 본격적인 동학농민혁명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