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그늘

▲ 라 환 희

꽃그늘이다. 그것도 오전에 내린 비에 나부시 떨군 꽃잎들로 주위가 온통 꽃물 들었다. 시동을 끄고 뒷좌석 돌아보니 아이는 주섬주섬 가지고 내려야 할 짐들을 챙기고 있다. 무거우니 엄마가 들고 갈게, 용돈은 챙겼니. 습관처럼 혀끝에 얹히는 말들을 어금니로 눌러 삼켰다. 제 소지품을 매고 안고 아이가 차문을 열자 “잘 지내렴, 토요일에 보자.” 되도록 짧게 배웅한다. 아이도 “다녀올게요.” 수식 없는 인사를 차문에 물려 놓고 기숙사를 향한 계단으로 올라간다. 한 계단 두 계단 아이의 걸음이 옮겨지는 각도에 따라 고개를 기울이며 눈으로 쫓는다. 아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배웅하고 차에서 내렸다.

 

습기 찬 바람이 안겨든다. 녹녹히 젖은 아스팔트. 수놓인 꽃잎에 이끌려 백일홍나무 아래로 들어선다. 제가 안은 품만큼 바닥을 물들여 놓고도 가지 끝마다 꽃차례 붉게 밝히고 있다. 줄기를 긁으면 나무가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흔들려서 간지러운 이름을 가진 나무. 환한 아름다움이다. 나를 향한 어머니의 미소처럼.

 

젊은 날을 오뉴월 볕 아래 사셨던 어머니는 어느 한 날이라도 꽃그늘 아래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주변을 둘러봐도 찾을 수 없는 기억의 편린. 그런 기억 한 조각 없다는 것이 아득해질 때가 있다. 꽃이 세 번 피었다 지면 쌀밥 먹을 때가 된다하여 배롱나무를 쌀밥나무라 불렀던 어머니. 햇볕을 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 스스로 그늘을 만들어야 했으므로.

 

검게 그을린 가난한 허리에 여름내 벗겨지던 허물들.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그 허물이 만들어낸 그늘 아래서 우리는 더디게 자랐다. 어스름 밝히는 가로등 아래 한 점 꽃잎, 어머니의 숨결인 양 바람을 탄다. 아이가 밝힌 건물의 사각 불빛 바라보며 운동장의 우레탄 트랙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아이는 입학 당시의 의욕과는 달리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새로운 생활을 힘들어 했다. 하루를 기숙사 창에 기운 달을 보고 시작해서 늦은 밤 머리 위로 뜬 달 보며 끝낸다는 아이의 힘없는 중얼거림에 목이 막혔다.

 

일요일 오후 볕을 두 손 가득 받는 아이를 바라보는 심정은 이민이라도 가고 싶었다. 이 땅에서 수험생 부모로 사는 사람치고 욱하고 치받는 마음 한 번 가져보지 않은 부모가 몇 이나 될까. 나는 보상심리처럼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대신해주고 싶어 감쌌다. 과유불급이라고 그럴수록 아이는 더 심약해져가는 것 같았고 나는 조바심쳤다. 옛말에 귀한 아이일수록 매를 들라 일렀고, 적당한 비바람은 나무의 성장에 필수 조건임을 안다. 익히 알면서도 자식 앞에서 이성적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는 아이를 위해 냉정해지기로 했다. 먼저 수시로 안부를 묻던 전화를 줄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모른 척했다. 아이가 당황하고 섭섭해 하는 눈길을 보낼 때마다 애써 외면했다. 덤으로 집안일이나 소소한 고민거리를 의논하는 등 자립심과 배려심을 끌어내기 위해 필요할 때면 언제고 붙잡아주고 해결해주던 넝쿨손을 하나 둘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손만 뻗으면 닫는 곳에 있던 버팀목이 거두어 질 때마다 아이는 엄마를 낯설어하고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곁가지를 만들어 스스로를 지탱할 것이다. 흔들리는 만큼 뿌리를 뻗어 땅을 움켜잡으며 내가 어머니 그늘의 깊이를 더듬어보는 것처럼 알게 되리라. 가지와 허공 그 경계가 백지 한 장 차이도 없는 하나의 공간이듯 실패와 깨달음 또한 하나임을.

 

* 수필가 라환희씨는 부안 솔바람소리문학회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북수채화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