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前 중앙위원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은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게 광고를 통해 익숙해진 말이다. 그러나 정치인의 변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훨씬 많다. 지난 15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동교동계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 합류'가 바로 그런 경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민주당 전 고문을 비롯해 DJ맨 김경재, 안동선, 이윤수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 20명이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는 파격 변신을 했다. 특히 유갑종 전 의원은 유신에 반대해 제 1호로 투옥된 인사이며, 이홍배 전 의원은 4.19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또 이보다 앞서 영입된 김기석 전 의원은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등 어떤 의미에서는 박후보와 정치적 원한관계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다.
이들이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걸었지만 누리꾼들이 '배신자'라는 비난을 쏟아내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까지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동교동계의 이동은 시쳇말로 '파격도 너무 파격'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한광옥 전 고문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정체성이 변해서 더 이상 몸을 담을 수 없었고 민주당이 먼저 소외시켜 소수의 의견을 피력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변신의 이유를 밝혔다.
사실 한 고문이 말한 민주당의 내부적 변화는 호남지역의 대선후보 지지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호남의 민심은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보다 무소속인 안철수 후보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나타났다.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줬던 호남지역 경선투표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인 것이다. 이와 관련 호남민심이 친노 세력에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한 상황에서 과거와 달리 명분있게 선택할 수 있는 안 후보에게 더 마음을 주는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민주당이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된다던 호남에서 민주당이 민심을 잃었다는 의미다. 지난 19일 민주당 중앙선대위 첫 회의가 전북에서 급하게 열린 일도 상황의 다급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 후보는 이보다 앞선 지난 10일 전북을 찾아 "전북도민이 참여정부 시절 홀대 받았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고, 지난달 27일 광주에서도 "호남 홀대론은 참여정부의 과오"라며 낮은 자세를 취했다. 이러한 민주당과 문 후보의 모습에 대해 또 다른 '정치적 변신'이라고 보는 호남인들이 적지 않다.
실제 노무현 정부 시절 왕수석으로 불렸던 문 후보는 '참여정부는 부산정권'이라고 발언해 93%의 지지를 보내줬던 호남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당사자이다. 참여정부 탄생의 주역이였던 염동연 전 의원이 "문 후보는 참여정부 때 호남인맥 청산의 주역이었다"고 밝혀 파문이 일기도 했고 경선과정에서 '호남상륙작전'이라는 말을 캠프에서 사용했다가 "호남이 적지냐"는 반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내가 좋아서 찍었겠냐. 이회창이 싫어서 찍은 거겠지"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던 호남에서 문 후보의 변신을 진정성 있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지 않다. 호남인은 변신한 문후보가 아니라 호남을 진심으로 챙기는 문 후보의 '변심'을 기대하고 있다. 문 후보가 부산정권이 아닌 공공의 대통령, 대한민국의 대통령감으로서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호남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문 후보에게 아예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