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향 : 순창 강천산 - 기암괴석에 불붙은 애기단풍

왕복 8㎞ 코스 맨발 산책로'호젓'…구장군·병풍 폭포'한폭의 수채화'…75m 구름다리 호남 최대 규모 자랑

▲ 신라 진성여왕 때(887년) 도선국사가 개창한 강천사. 애기 단풍이 곱게 물들어 만산홍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오-메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

 

누님은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메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메 단풍 들것네.'

 

 

'오~메 단풍 들것네'의 김영랑 시인의 싯구절이 생각나는 계절~, 순창 강천산으로 무작정 떠났다. 사계절 산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순창 강천산(剛泉山·584m).

 

1981년 전국 최초로 순창군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라 진성여왕 때(887년) 도선국사가 개창한 강천사(剛泉寺)가 있으며, 산 이름도 강천사(剛泉寺)에서 유래했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유명하다. 애기 단풍이 곱게 물들면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장관을 이루는 곳이기에 가을 산행지로 적극 추천한다.

 

 

△ 애기 단풍으로 유명한 강천산

 

아기자기한 모습과 진한 색으로 자기를 표현 하는 애기 단풍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움직인다. 잎은 작으면서 색깔이 핏빛처럼 고운 애기 단풍잎. 강천산을 휘어 감고 있는 애기단풍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머릿속까지 붉어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어찌 이리 붉을 수 있을까.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리기도 했던 곳. 깊은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져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린 바로 그 곳이다.

 

1981년 전국 최초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강천산은 사계절의 멋이 있다.

 

봄에는 진달래·개나리·벚꽃이 넘실거리며, 여름에는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폭포와 계곡, 가을에는 애기단풍의 즐비함이 산행을 부추기며, 겨울에는 내리는 눈에 온 세상이 새하얀 눈꽃송이에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기운이 있고 잔설로 덥힌 현수교는 설경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왕복 8㎞에 이르는 맨발 산책로와 120m에서 떨어지는 구장군 폭포의 장관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병풍폭포, 산림욕장(산책로·새동네), 강천사(삼인대·강천사 5층석탑·모과나무), 현수교(구름다리), 구장군폭포(성테마공원), 웰빙(맨발)산책로로 이어지는 코스다.

 

기암절벽과 청정한 계곡 사이로 펼쳐지는 모래 산책길을 맨발로 걸으면 강천산의 성스러운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자연형상을 최대한 활용한 병풍폭포는 자연미와 웅장함이 살아있고 병풍바위에 조성된 높이 40m에 흐르는 물줄기는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며 등산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강천 계곡 목재데크 산책로를 걸으면 숲과 계곡에서 풍겨오는 청정한 산소와 음이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면 '숲속 새동네'에 공작·비둘기·칠면조 등이 반겨 준다.

 

강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末寺)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고려시대인 1316년(충숙왕 3) 덕현이 5층 석탑과 12개 암자를 창건하여 사세(寺勢)를 확장하였고, 조선시대 1482년(성종 13)에는 신말주(申末舟)의 부인 설(薛)씨의 시주를 얻어 중창하였다.

 

자연암석으로 된 사각문인 금강문은 1316년 덕현이 절 주위의 경치가 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삼인대(전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27호)는 순창군수 충암 김정, 담양부사 눌재 박상, 무안현감 석현 유옥 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강천산 계곡에 모여서 과거 억울하게 폐위된 신비를 복위시키는 것이 옳다고 믿어 각기의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맹세하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한 곳이라 한다.

 

모과나무(전북도 지정 기념물 제97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300년 정도) 모과나무로 지금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으며 가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현수교(구름다리)는 1980년에 조성된 높이 120m·길이 75m의 구름다리로 호남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천년을 살다 승천하지 못해 피를 토하고 쓰러져간 용의 머리 핏자국이 남아 있다는 용머리 폭포를 함께 볼 수 있다.

 

구장군 폭포, 마한시대 9명의 장수가 죽기를 결의하고 전장에 나가 승리를 얻었다는 전설이 담긴 폭포로 남근과 여근 형상의 구장군폭포는 웅장함과 기이한 형상이 살아있어 관광객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모래 산책길을 맨발로 걸으면 강천산의 성스러운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 강천산 거북 바위의 전설

 

강천산 계곡 폭포 아래에 위치한 용소는 밤이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한다고 알려질 만큼 물이 맑고 깊었다. 여기엔 옛날부터 전해내려온 이야기가 있다.

 

옛날 강천산 산골 마을에 한 청년이 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구하러 강천산의 깊은 산속을 돌아 다니다 산삼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그만 폭포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마침 용소에서 목욕을 하던 선녀가 청년을 발견하고 청년의 정성에 감동하여 산삼을 찾아주고 사랑에 빠졌다. 이 소식을 들은 옥황상제는 그들에게 천년동안 폭포에서 거북이로 살게 하고 천년이 되는 날 동트기 전 폭포 정상에 오르면 하늘로 올려 주리라 약속했다.

 

마침내 천년이 되는 날 암거북을 먼저 정상에 올려 보낸 숫거북이 정상으로 향하는 순간 호랑이를 만나 숫거북을 공격하게 되고 숫거북은 호랑이와 다투다 동이 트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옥황상제는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을 영원히 지켜주고자 그들을 바위로 변하게 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를 '거북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며, 마한시대 9명의 장수가 폭포의 천년 사랑 거북바위를 기리며 도원결의하고 전장에 나가 승리를 쟁취했다고 전해지면서 폭포 이름을 '구장군 폭포'라 부르게 됐다.

 

 

 

/김진아 문화전문시민기자

 

(익산문화재단 문화예술사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