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죽나무, 팥배나무, 상수리나무, 산벚나무
여름내내 동그랗게 몸을 말아 올리며
습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숲의 정기는 영글었나보다.
가끔씩 폐부 깊이 응혈된 혈이 쏟아진다.
살아온 만큼 버리고 간다.
다시 길을 찾아 걸으면
산자락 밑에 한 그림자 숨었다 사라지고
들국화 한들한들 웃다가 말다가
두리번거리며 걸어보는 길
이제 가야 할 때가 가까와 진다.
예고된 긴 장강長江이
서산마루에 금니박이로 웃고 있다.
※ 백승연 시인은 1990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겨울 잠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