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명가' 전북의 굴욕

프로야구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은 12월11일이다. 이 날은 1981년 해태와 롯데, 삼성, MBC, 삼미, 두산 등 6개 구단주들이 서울 롯데호텔에 모여 프로야구 발족을 결의한 날이다. 오늘의 프로야구를 있게 한 기점이다. 매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을 12월11일에 여는 것도 프로야구 발족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올해도 이 날은 의미 있는 날이 될 것 같다. 10구단 창단 안건이 내달 11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서 다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구단주들은 이제 10구단 창단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게 됐다. 사상 첫 720만 관중 돌파와 드세진 10구단 창단 여론, 9개 홀수 구단 운영에 따른 문제점 때문이다.

 

관심은 창단팀의 연고지를 어느 지역으로 할 것이냐에 있다. '야구의 명가' 전북이 수원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원은 작년 3월 전북보다 5개월 먼저 유치의향서를 KBO에 제출했다. 지난해 9월에는 330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프로야구 10구단 수원유치를 위한 시민연대'를 출범시켰다. 그리곤 마침내 공룡기업인 KT를 연고기업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KT는 실은 전북이 작년 연고기업으로 의향을 타진한 기업이다. 수원의 제의에도 KT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냈었다. 그럼에도 경기도와 수원은 악착스럽게 성사시켰다. 결과적으로 전북은 뒤퉁수를 맞은 셈이다.

 

전북의 유치 노력은 수원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수원 따라하기' 수준이다. 전주시가 맨 처음 10구단 유치 뜻을 밝히자 전북도가 이를 가로채 군산 익산 완주 등 4개 자치단체 공동 추진으로 틀을 잡더니 성공기미가 희박하자 최근엔 "전주시 니네들이 알아서 하라."고 떠넘기기 발언이 책임자급 입에서 나온 적도 있다.

 

뒤늦게 전북도가 지방의회와 시민사회단체를 내세워 유치추진위를 구성하고 나섰지만 이 역시 면피성 발빼기라는 인상이 짙다. 연고기업으로 점지된 하림과 전북은행 등 향토기업도 마지 못해 따라가는 식이다. 수원이 KT와 손 잡자 '전의(戰意)'를 상실한 상태다.

 

'야구 명가'의 부활은 치밀하고 집요한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것이지 대충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시늉만 하다간 죽도 밥도 안된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칼을 뺐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경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