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퇴직을 하고 1년 여를 아무 일 없이 보냈다. 땅은 샀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그러다 농업전문대학에 입학을 했다. 교수들 중에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들이 많아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그 중 한 분은 ROTC까지 선배였다. 남편이 그 선생님을 특히 따랐는데 선생님도 남편의 이력이 특별해서 호기심이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만남이 시작되엇다.
선생님은 그 때부터 밭의 토질검사부터 시작해, 작물시험장장 농촌연구소소장 농사짓는 사람들을 소개해줬다. 농사지으면서 알고 지내야 할 많은 사람들을 소개 해줘 남편에게 큰 힘이 되었다. 시설보조금을 받게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농장 컨설팅을 맡아 주었다. 덕분에 남편은 시행착오 한 번 없이 본궤도에 올라설 수 있었다.
새댁이 첫아이 키울 때 애기가 울기만 해도 잠만 안 자도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하듯, 남편은 포도잎이 마르기만 해도 포도송이에 점만 하나 생겨도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직접 포도밭으로 오셨고,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동료교수들이나 연구소 선후배들에게까지 연락해 원인과 치료법을 알려주었다. 수업이 없는 날은 밭으로 출근하기도 했다.
틈틈이 토질검사를 해 필요한 미량원소들을 주도록 했다. 포도나무들은 잘 자랐고 맛있는 포도가 탐스럽게 달렸다. 알이 크고 씨가 없고 당도가 높아 인기가 많았다. 농사친구 하나 없는 남편이 바로 법인에 들어가고 판로까지 걱정 없었던 것도 모두 선생님 덕분이었다.
내년 2월 말로 선생님이 정년퇴직을 한다. 퇴직선물을 해 드리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선생님 내외분을 모시고 티베트여행을 계획했다. 마침 선생님도 그곳은 가보지 않았단다.
티베트는 시간이 되고 돈이 된다고 갈수 있는 곳이 아니다. 입국허가증을 받아야 하기에 다 된듯하다가 날짜가 연기되기도 했다. 더구나 고산병 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했다. 특히 사모님은 주치의에게 오지여행 자제 요청을 받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선생님 부부를 모시고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선생님 정년만 생각했는데 올해가 사모님 회갑이라는 것을 여행 중에 알았다. 출발 날짜에 어려움이 있더니 이런 숨은 뜻이 있었던 모양이다. 라싸에서 부랴부랴 케이크를 준비하느라 열차시간에 빠듯했고, 6인1실의 칭짱열차 침대칸에서 그 상자가 커서 발도 제대로 뻗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음력 9월 2일, 열차 안에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옆 실 옆 실까지 나눠 먹으며 많은 사람들과 사모님의 회갑을 축하했다. 선생님 퇴직기념여행이 사모님 회갑여행이 된 듯 했다. 우연히 제 날짜에 사모님 회갑까지 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했다. 사모님 얼굴이 환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또 배웠다며 내 손을 잡는다. 손이 따뜻하다. 5000고지의 칭짱열차 안에서 회갑을 맞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좋은 만남은 좋은 일을 만들어 준다. 선생님 덕분에 아들이 3차까지의 면접시험을 무난히 치르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올해 초 과장 진급시험에 합격을 했다. 선생님이 당신 일처럼 좋아했다.
가이드는 인연이 있는 사람만이 티베트에 올 수 있다고 했다. 어디 티베트뿐 이겠는가. 사람이든 상황이든 일이든 사물이든 인연이 있어야 만난다. 신들의 땅 티베트에서 선생님과의 인연을 공고히 하려 했는데, 고산병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 선생님 얼굴이 붓고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코피로,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고 선생님은 그걸 숨기려 애쓰고. 나도 환자여서 주사까지 맞으며 다녔다. 이런 고생들이 애틋함으로 오래도록 서로의 마음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넉넉잡아 사람이 100년 산다고 하고 지구상 인구를 60억 잡을 때 내가 어떤 이와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마 무한대분의 1이 아닐까. 인연이란 불가능의 숫자에서 만들어진, 무엇으로 환산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만남이 얼마나 귀중한가 다시 생각해 본다. 앞으로 어떤 사람과 어떤 만남이 있을까 기대된다.
* 수필가 윤복순씨는 익산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