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남의 땅을 부쳐 먹고 산 소작인의 무덤에서는 풀이 나지만
남에게 땅을 내주고 호령하고 도조만 받아먹고 산
지주의 무덤에서는 풀이 나지 않습니다.
남의 땅을 부쳐 먹고 산 소작인은 풀만 먹고 살았으므로 그 몸 모두가 풀이지만
도조만 받아먹고 산 지주는 고기만 먹고 살았으므로 그 몸 모두가 고기 덩어리입니다. -「口傳」전문
'소작인'이 곧 '들녘'이고, '노동'이며, '진실'인 반면, '지주'는 '고기덩어리', '착취'와 '위선'의 상징으로 비유되고 있다. '풀'은 '진실'이며, '땅'은 그것을 길러내는 '바탕'이요 자연회귀를 지향하는 그의 정신적 거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풀(진실)들은 지주와 권력으로부터 짓밟히고 수탈당한 민초들의 모습이요, 그런 속에서도 모진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끈질긴 저항과 생명력의 상징으로 드러나 있다.
'풀' 그리고 '푸르름' 그것은 생명이다. 그리고 그 생명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에 생명이 있는 곳엔 으레 땅이 공평하게 뒤따라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마치 하늘이 지상에 햇빛과 이슬을 공평하게 내리듯 무릇 생명이 점지된 것들에겐 그 생명체가 딛고 살아가야할 땅 또한 고르게 나누어져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곧 천부토지설(天賦土地說)인 셈이다. 하늘이 곧 땅이고, 물이라는 생각, 그래서 그의 시에는 종종 '물이 내려와서 농사를 짓'는가 하면, '땅이 하늘에 닿아 있'기도 하면서 하늘과 땅이 하나로 융합·소통되어 있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고, 그것이 하늘의 섭리라는 생각이다.
이병훈 시인(1925-2009)은 군산시 옥구면 당북리에서 태어나 서당과 소학교를 다녔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일본인의 농장에서 수확량의 70%를 지주에게 바치며 살아간 소작인들이 대부분이었다. 6.25 직후 서울신문군산지국과 기자 생활을 겸하면서 1959년 신석정 선생의 추천으로 『자유문학』지로 등단, 1970년 제 1시집 『단층』을 비롯 18권에 달하는 시집을 간행하고, 군산(문협, 예총) 지부장과 군산 문화원장, 1984년에는 『석정 문학회』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이후 한국현대시인상과 대한민국문화훈장을 받았다.
'들녘'에서 시작하여 '들녘'에서 끝날 정도로 '들녘'이 이병훈 시의 주요 배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일제침략기 군산 옥구라고 하는 들녘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일제로부터 부당하게 농토를 수탈당하고, 소작인의 아들로 억울하게 살아가야만 했던, 어린 날의 뼈아픈 상처에 대한 치유와 회복의 길이 아니었을까 한다.
농부는
농약을 물고 논두렁에 쓰러진
황새를 묻고 있었다. /.../
다음 날
황새는 그림자가 되어
그 들녘을 건너가고 있었다.
-「下浦길 5」에서
그로부터 한 사십년쯤 지난 지금 어머니들은 탈탈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콩밭 열무를 팔러 다닌다. - 비단 어머니들 뿐 아니라 신작로도 들도 들 건너 산들도 쇠붙이 냄새가 지독한 멀미에 지쳐 풀이 죽어 있었다.
-「멀미」-쇠붙이 냄새, 에서
'황새'와 '소나무', '어머니', '들', '산' 이들 모두 생명적 존재자이다. 이러한 생명적인 것들이 인간의 지나친 욕망과 문명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면서 그것들 앞에 짓밟힌 자연과 생명을 안타까와 한다.
이러한 그의 문명 비판적 시각은 자연과 인간, 주체와 타자간의 평등과 화해를 꿈꾸면서 한국시사에서 새로운 에코-페미니즘의 새 장을 연 선두 주자로 기억되리라고 본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