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11월 22일 12면 보도)
CJ나 부귀농협 모두 이번 계약 종료로 서로 득이 될 게 없는 길을 택하면서다.
우선 CJ입장에서는 이미 투자한 생산설비(17억원)를 회수해 간다해도 이전비가 만만찮을 뿐더러,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야 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부귀농협 입장에서도 전체 납품 물량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주 거래처를 잃게 되면서 판로에 적신호가 켜지는 등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CJ와 부귀농협은 계약 1년 3개월여만인 지난 9월말 전격 계약을 종료했다.
표면상 문제의 발단은 CJ측이 3개월 계약 연장 종료일을 10여일 앞둔 지난 9월 중순 부귀농협에 공문을 보내면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부귀농협 측이 밝힌 이 공문에는 '수입산 고춧가루로 대체하면 연간 17억원의 원가절감효과가 있으니 이를 써주던가, 아니면 그(절감효과)에 상응하는 원가절감 복안을 강구해줬으면 한다'라고 적시되어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꼭 수입산을 써 달라고 명문화한 것은 아니지만, 지역안배와 농민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공적인 기관인 농협에 이같은 공문을 보낸 게 화근이 된 셈이다.
이에, 부귀농협 측은 두 차례의 이사회를 열어 '안된다'라는 결론을 도출함과 동시에 내수개발에 힘을 쏟는 것으로 사실상 결렬을 선언했다.
연간 120억원의 매출을 올려야 경영 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부귀농협 입장에서 연간 40억원 가량의 판로를 포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 상황에서다.
이와 관련, CJ 제일제당 한 관계자는 "부귀농협의 물량대응과 품질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여러 차례 내비쳤고, 이대로 가면 CJ브랜드를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될 상황이었다"는 말로, 나름의 결렬 속내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그 관계자는 "문제가 된 고춧가루도 진안산이 아닌 다른 지역 것"이라며 그럴 바에야 수입산을 써서라도 원가를 보전해야 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 말은 왜 수입산으로 대체해야만 하는지를 밝힌 대목이다. 하지만 부귀농협 관계자의 말은 다르다. "당초 계약할 때 CJ측이 ㎏당 2만4000원 가량하는 진안산 고춧가루보다 1만원 정도 비싼 경북 영양군(영양고추유통공사)의 세절건고춧가루를 바랬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문대로라면, 그런 연유로 좋은 재료를 써서라도 고품질의 김치를 생산하려는 CJ측이 굳이 가격이 저렴한 수입산을 쓰려했는지에 의문이 남는다.
일각에선, 계약 연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CJ측이 명분을 삼기 위해 부귀농협이 수용키 힘든 내용의 공문을 보낸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