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잡방과 도문대작

경북 안동의 군자마을에 가면 관광객 대상의 '수운잡방(需雲雜方) 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고택 관광과 음식문화를 접목시킨 것으로 꽤 인기다. 안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양반고을로 하회마을과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 등의 고택이 즐비하다. 이들 고택도 구경하고 반가(班家)의 전통음식도 맛볼 수 있다면 여행의 즐거움이 더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프로그램이 자리잡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조리서 '수운잡방' 덕분이다. 이 책은 1500년대 초 탁청정(濯淸亭) 김유가 저술한 것으로 그의 막내아들 종가에서 470여 년을 보존해 왔다. 유가(儒家)의 접빈객(接賓客)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상·하편 2권에 담겨진 음식은 121항으로 양반가답게 음식보다 전통주를 빚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 음식과 탁청정이라는 고택의 스토리텔링은 관광상품으로 딱 어울린다. 김유의 호에서 따온 고택 탁청정은 그가 고향에서 평생 부모님을 모시고 독서하기 위해 지은 집이지만 규모가 제법 크다. 낙성연에 초대된 퇴계가 "선비의 집이 너무 호사스럽다"며 오르기를 꺼렸다고 할 정도다. 또 탁청정 현판은 당대의 명필 한석봉의 글씨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한다. 탁청정 글씨를 보면'탁(濯)'의 둘째 점이 유난히 굵고 힘이 있다. 그것은 한석봉이 현판을 벽에 걸고, 사다리에 올라가 글씨를 쓰는데 이를 아니꼽게 여긴 문중사람이 발로 사다리를 걷어찬데서 유래한다. 그때 한석봉이 힘을 줘 붓이 판상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상도에 수운잡방이 있다면 전라도에는 '도문대작(屠門大嚼)'이 있다.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이단아였던 허균이 1611년 함열(지금의 함라)로 귀양와 쓴 것이다. 도문(屠門)은 소나 돼지를 잡는 푸줏간의 문이고, 대작(大嚼)은 크게 씹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푸줏간 문을 향해 입맛을 다신다"는 의미다. 그의 저서 '성소부부고'에 실려있는데 120여 종의 식품과 식재료에 대한 품평서다.

 

유배지에서 거친 음식만을 먹게 되자, 예전에 맛봤던 음식을 생각하며 "먹는 것에 사치해선 안되고 절약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북의 경우 백산자(白散子) 승도(僧挑) 녹미(鹿尾) 웅어 뱅어 노란조기 오징어 도하(桃蝦) 생강 등이 언급돼 있다. 비록 전국적인 것을 다루고 있으나 음식창의도시 전주가 이를 활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조상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