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고 직업 10계명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자인 김난도(49) 서울대교수는 "강연을 다니다 보면 선택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이 많다."며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기준을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게 좋으니까 이걸 해라"라고 하기 보다는 "좋은 기준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좋다."고 일깨운다. 그러면서 좋은 기준으로 든 것이 '거창고 직업 10계명'이다.

 

'월급이 적은 쪽으로 가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원하는 곳으로 가라/ 승진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모든 것을 갖춘 곳은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앞 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 가지 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 자리로 가라/ 부모나 아내, 약혼자가 결사 반대하는 곳이면 틀림 없으니 의심하지 말고 가라/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이 직업 10계명은 무주 출신인 전영창 전 교장이 40여년 전부터 설교하고 훈화한 내용의 핵심을 뽑아 정리한 것이다. 전 교장은 참여정부 교육혁신위원장을 지낸 전성은 전 교장의 부친이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계율이지만 기독교 정신이 설립이념인 걸 안다면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김선봉 교장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고 이에 치중하다 보면 갈등구조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이를 따르지 말고 졸업하면 사회에 나가 가장 낮은 곳에서 행복을 가꿔 나가라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대학진학과 취업시즌이다. 진로를 놓고 고민하기 마련이다. 높은 곳, 고연봉만 찾다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살리지 못하는 청춘들이 의외로 많다. 명문대 진학실적 때문에 희생되는 학생들도 있고, 부모 눈치 보느라 적성에도 맞지 않는 직업을 선택하는 졸업생도 많다. 모두 불행이다.

 

이 세상에는 2만여가지 직업이 있다. 진로선택은 김교수 말처럼 이게 좋으니까 이걸 하라고 하기 보다는 좋은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게 옳다. 교사나 학부모들이 욕심을 버려야 가능한 일이다. 철학자 탁석산(56)은 "좋아하는 것을 하지 말고 잘하는 것을 하라."고 청춘들에게 말한다. 이 역시 음미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기준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