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사면

정의(正義)가 무너진 사회는 희망이 없다. 부정이 판치는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무슨 일할 의욕이 생기겠는가.

 

1988년 10월 탈주범 지강헌이 내뱉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가 이따금 회자되곤 한다. 당시 600억 원을 횡령한 전경환에 대한 처벌보다 500만 원 절도범의 형기가 더 길고 가혹한 데 대한 이 독설은 민초가 우리 사회를 향해 가한 처절한 경고였다.

 

정치·경제· 사회 등 거물급 인사들의 범죄 사건은 처음엔 세상이 뒤집힐 듯 떠들썩하다. 하지만 결국 면죄부가 주어지기 일쑤였다. 사면 복권 혜택을 받아 정상인으로 둔갑해 버린다. 그들이 뒤집어 쓴 오물은 너무 쉽게 세척된다.

 

연초 기업분석기관인 재벌닷컴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1990년 이후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 7명이 총 2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최소 73일에서 584일만에 모두 사면됐다. 더러운 돈을 받아 챙기는 정치범들 경우도 오십보 백보다.

 

하지만 군사정부로부터 억울하게 간첩 등 누명을 쓴 사람 등은 다시 재판을 받고서야 겨우 누명을 벗어야 한다.

 

며칠 전 '특사설'에 나라가 들썩였다.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중대 범죄자들이 대법원 상고를 잇따라 포기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했는데, 그 이유가 특별사면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MB의 최측근으로 4년간 권력을 휘두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MB의 절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퍼스트레이디의 사촌오빠인 김재홍 전 KT&G 복지재단 사장 등 3명이다. 최씨는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로 1·2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추징금 6억 원을, 천씨는 알선수재 혐의 파기 환송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30억 9400여만 원을, 김씨는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청탁과 금품을 받은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이들의 상고 포기 소식을 접한 세상 인심이 사납다. 이들이 상고를 포기한 것은 '대선 후 성탄절 특별사면을 겨냥한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모두 특별사면을 제한하겠다고 밝혀 다음 정권에서 특사로 풀릴 가능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등의 말이 나왔다. 권력가의 측근들이니 오비이락이라고 해도 어떡하겠는가. 세상 눈이 그만큼 무섭다는 증거다.

 

청와대가 나서 부인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정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김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