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구단 왜 전북인가 ② 전북과 프로야구 - 도민 102만명 서명, 유치 열기 후끈

80년대 해태·90년대 쌍방울에 열광…2000년 이후 10여년 간 연고팀 갈망

"한국 프로야구사의 한 막을 장식한 쌍방울 레이더스는 이제 장막 속으로 사라지려고 합니다. (중략) 그동안 쌍방울 레이더스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1990년 제8구단으로 창단한 쌍방울 레이더스(Ssangbangwool Raiders)는 2000년 3월30일 고별사를 발표했다. 모기업인 쌍방울개발이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고 KBO는 2000년 3월23일 레이더스의 퇴출을 공식 결정했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진은 SK와이번즈에 흡수됐고 연고지 또한 인천으로 넘어갔다.

 

당시 야구 관계자들은 "도내 연고구단이 다시 창단되려면 최소 10년 이상은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전북 연고를 지키기 위해 상당수 도민은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지만 경제성에 밀리면서 전북 연고 프로야구팀은 없어졌다. 프로스포츠에서 도내 위상 저하와 함께 열약한 도세에 대한 패배주의도 확산됐다.

 

△구단의 추억

 

8구단 창단 전까지 전북 연고권은 해태 타이거즈에 있었다. 8구단은 초기 쌍방울그룹과 미원그룹의 컨소시엄 형태로 추진됐지만 미원그룹은 빠졌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0년 창단 뒤 1년간 2군 리그에서 경기를 치렀고, 1991년부터 1군 리그에 진출, 같은해 3월31일 개막전에서 11대0으로 승리해 화려하게 정규 리그에 데뷔했다. 하지만 창단 이후 선수난과 빈약한 재정으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홈경기에서 연패를 하던 날에는 선수진에게 물병과 쓰레기 세례가 이어졌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뒤에는 1996년 정규시즌 2위, 1997년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며 상한가를 기록했다. 당시 선수단 매니저였던 전주시통합야구협회 강웅석 회장은 "그 때는 전주야구장에서 암표도 성행해 5000원이던 티켓이 2만~2만5000원에 거래되기도 했다"며 "표를 구하지 못해 경기장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1998년 시즌에는 김기태, 최태원, 조원우, 김원형 등의 활약에도 정규 시즌 6위로 떨어졌다. 구단이 '선수 팔기'에 나서며 선수층은 더욱 얇아졌다. 1999년 시즌에 97패(28승 7무)를 기록한 뒤 해체 수순을 밟았다. 당시 8개 구단 가운데 레이더스만이 정상에 오르지 못한 채 사라졌다.

 

△이제는 10구단

 

8구단을 떠난 보낸 지 10여년이 흘러 이제는 10구단 유치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3월 9구단이 창원에서 창단됨에 따라 10구단의 필요성도 대두됐다. 전북도와 전주, 군산, 익산, 완주는 유치를 검토한 끝에 같은 해 6월 '연고도시 인구 100만명'이라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공동연고지로 추진을 합의했다.

 

지난해 6월 초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프로야구 창단 여론조사에서 85.3%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86%는 관람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한 달 뒤 도와 4개 시·군 단체장, 의회의장이 4개 시·군을 공동 연고지로, 전주시를 대표도시로 해 프로야구 제10구단을 유치하기로 공동합의서를 채택했다. 같은 해 8월29일에는 KBO에 프로야구단 지원계획을 포함한 제10구단 유치의향서를 제출했다.

 

의향서를 낸 다음날 '프로야구 제10구단 범도민유치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9월 한 달간 범도민 100만인 서명운동 전개해 102만 명의 서명을 받으며 도민의 의지를 결집했다. 지난 8월24일~26일 서울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야구박람회'에서 수도권 시민 771명 가운데 88.5%가 제10구단 연고도시로 전북을 지지한다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특히 지난 4일 10구단 유치위는 부영그룹을 모기업으로 의결했다. 13일 도와 부영그룹은 10구단 창단을 공식 선포하며 유치전에 맞불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