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해를 씻어내며 - 신수미

희끗희끗한 저녁놀 비켜가는 시간인데

 

산등성이가 푸른 멍투성이다

 

미련이 남는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교차하는 길

 

실타래처럼 풀어 놓은 시간 앞에

 

목이 멘다

 

열두 달의 장엄한 대서사시

 

펼쳐도 끝이 없어 하늘도 울먹인다

 

애증이 남아

 

갈무리가 힘든 묵은 해

 

빗살처럼 쏟아지는 눈발 앞에

 

주마등처럼 스치는 얼굴들

 

동네 어귀 장승처럼 세워 둘

 

눈사람 만들고 싶다.

 

 

※ 신수미 시인은 2009년 '한국문학예술'로 등단해 전북문인협회·열린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