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한 동안 신문 1면을 편집했던 후배가 논설실에 들렸다. "어이, 이번 선거에 1면 톱제목을 뽑으면 뭐라해야겠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마자 "전북, 이제 5년간 더 고생해야 할 듯"이라는 대답이 튀어 나왔다.
모두가 웃었지만 뒷맛이 영 씁쓸했다. 하지만 정곡을 찌른 대답이 아닐까 싶었다. 앞으로 전북, 나아가 호남의 '박근혜 시대 5년'을 한 마디로 집약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번 대선에서 야당의 문 후보에게 86.2%를 몰아준 전북은 '찬밥신세가 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번 대선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래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맞대결을 펼친 일대 격전이었다. 또 세대간, 지역간 대결의 성격도 강했다. 서로의 인력과 화력을 총동원해 물러설 수 없는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였다. 그런 만큼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문 후보를 밀었던 절반 가까운 국민들 중에는 실의와 허탈에 우는 사람이 많다. 요샛말로 '멘붕'이다. 또 당분간 신문과 방송을 보지 않겠다는 사람도 꽤 있다.
이것은 뭘 말할까. 단순히 선거 뒤끝에 찾아오는 일과성 패닉상태일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리 보면 큰 오산이다. 전북의 경우 오랫동안 차별받았고, 그 차별이 또 다시 계속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은연중 깔려 있다.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우려와 함께 "언제 따뜻한 밥 먹은 적 있느냐?"는 자조와 반항마저 섞여 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박 당선자의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박 당선자가 선거기간 내내 역설했던 대통합의 리더십에 답이 있다. 이를 해결치 못할 경우 박 당선자는 임기동안 반쪽 대통령에 불과하다.
대통합은 포용력을 전제로 한다. 더불어 자기 희생과 양보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했던 '고소영 내각'은 그 반면교사다. 이와 관련,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의 리더십은 정면교사가 될 것이다. 1995년 퓰리처상을 받은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에 보면 라이벌까지 끌어 안는 링컨의 리더십을 조명하고 있다. 링컨이 어떻게 라이벌을 친구로 만들고, 편 가름없이 인재를 등용하고, 이질적인 내각을 구성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난국을 타개하는지를 보여준다. 또 가깝게는 4년전 오바마 대통령의 예도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혈투를 벌였던 오바마는 당선되자마자 라이벌 힐리리를 최고의 요직은 국무장관에 4년 내내 기용하지 않았던가.
다행인 것은 박 당선자가 당선과 함께 "모든 지역과 성별, 세대의 사람을 골고루 증용하겠다"고 탕평인사를 밝힌 점이다. 또 패배한 문 후보에게 국정협조를 당부하고, 선거를 도왔던 측근이 일선에서 물러난 점도 보기 좋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뿌린 이념의 편가르기와 지역감정의 골을 메우기 위해서는 탕평인사로는 어림도 없다.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진보내각' '호남내각'이라 불릴 정도의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 더불어 지역개발사업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지역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 진보와 호남이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 박 당선자는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정으로 대통합이요, 이 나라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