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 1915∼2000)는 시집 '질마재 신화'에 실은 '이삼만이라는 신(神)'에서 창암 이삼만(蒼巖 李三晩 1770∼1847)의 글씨를 뱀 잡는 신필로 묘사하고 있다. 미당이 이 시를 쓴 것은 근거가 있다고 한다. 정읍에는 정월 초순 상사일(上巳日, 정월 첫 뱀날)에 행해지는 배암뱅이 풍속이 있는데, 정초 액막이 행사다. 사람들은 상사일 새벽 동 트기 전에 '李三晩' 등 액막이에 신통하다는 글씨를 집 기둥 곳곳에 붙여 뱀이나 잡귀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정읍 사람들은 이날 '李三晩'을 쓴 종이를 주로 붙였다고 하는데 창암이 뱀을 무척 싫어한 데서 기인했다는 말이 전한다. 창암의 부친이 독사에 물려 죽었고, 이 때문에 이삼만이 뱀을 보기만 하면 잡아 죽이는 바람에 뱀이 이삼만 앞에서는 옴짝달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삼만이 쓰여진 글씨를 배암뱅이 날에 사용했다고 전한다.
이삼만의 작품에는 실제로 뱀이 등장한다. 그의 대표적 유수체(流水體) 작품인 '山光水色' 네글자에서는 네마리의 뱀이 살아 움직인다. 글자 하나 하나를 날래고 독한 뱀의 형상으로 완성한 작가의 상상력과 운필의 경지가 대단하다. 산천을 휘젓고 다니는 뱀의 모습이 현란스럽다. 작품 산광수색에 등장하는 창암의 뱀은 산천 풍광을 휘감고 다니는 순수한 자연의 뱀일 수 있다. 현무도 속의 담긴 수호, 재생, 영생의 의미와는 다르다.
2013년이 십이지신(十二支神) 중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뱀띠해 계사년(癸巳年)이다보니 뱀과 연관 있는 이삼만의 작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1년 한햇동안 창암의 고향 정읍에서 시작해 전주와 광주, 제주 등 전국에서 열린 그의 특별전에서 신필의 가치가 재조명된 데 이어 내년 계사년을 계기로 그의 작품이 다시 세인의 눈을 끌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뱀띠해를 기념해 얼마전 시작한 '상상과 현실, 여러 얼굴을 가진 뱀' 전시에서 각종 뱀 그림을 비롯해 창암의 산광수색 등 명작 40여점이 소개되고 있다. 전북이 낳은 명필 창암 이삼만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조광진(曺匡振, 1772~1840)과 더불어 당대 삼필(三筆)로 꼽힌다. 김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