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천사의 '나비 효과'

자신의 재화와 노력을 나누는 마음과 용기는 소중하며 박수받을 일

▲ 이 종 성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얼굴 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는 전북을 대표하는 익명의 기부자인 '얼굴 없는 천사'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0년간 한결같이 익명으로 선행을 베풀어 온 얼굴 없는 천사의 숭고한 나눔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9년 전주시에서 마련한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얼굴 없는 천사는 찾아왔다. 지난 2000년 초등학생을 통해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민원 창구에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자그마치 13년째다. 지금까지 3억원에 가까운 거금을 기부한 천사의 신원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가 단지 사회적 명예와 유명세를 타기 위해서 매년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는 몇 해 전 성금과 함께 이런 쪽지를 남겼다고 한다.

 

'대한민국 모든 어머님이 그러셨듯이 저희 어머님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으신 돈이랍니다.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였으면 합니다.'

 

전북에는 유독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많다. 전주 노송동의 천사 외에도 햇수로 3년째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을 찾아온 '얼굴 없는 노신사'는 올해도 1000만원권 수표 2장이 들어있는 봉투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는 "결식아동을 돕는 데 썼으면 좋겠다"는 말만 남긴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최근 익산시에 100만원을 기부한 '붕어빵 천사' 역시 사실은 얼굴 없는 익명의 기부자였다. 익산 원광대병원 맞은편 작은 상가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는 김남수씨는 애초 사랑의열매 지정기탁을 통해 "저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었다"며 익명으로 봉투를 건넸다. 언론보도를 통해 신분이 밝혀졌지만, 그는 처음부터 남에게 알리기 위해 기부한 것은 아니었다. 슬하에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넷을 키우고 있는 그의 형편 역시 여유로운 편이 못 된다. 그는 붕어빵 장사를 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이라며 내년에는 어려운 익산 시민들이 희망을 품고 힘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매번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얼굴 없는 천사들의 사례처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익명의 기부만이 나눔의 미덕인 것은 아니다.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살아온 인생, 현재의 환경, 기부 여건과 동기 등을 고려해 기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익명으로 할 것인지 아닌지 역시 기부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므로 어떤 기부이든지 그 선행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눔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름과 금액이 아니라 나눔 활동을 하게 된 동기와 어려운 이웃을 헤아리는 따뜻한 진심이다. 누구든 자신의 재화와 노력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소중하며, 이를 실천하는 용기는 박수받아야 한다.

 

최근 사랑의열매에 1억원 기부를 약정한 탤런트 겸 영화배우 수애도 이미지로만 보면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 같지만 어린 시절을 서울 봉천동 달동네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는 구두수선을 하던 성실한 아버지와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지만, 소녀 수애는 꿈이라는 게 없던 아이였다고 술회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세상으로 나왔듯이 나의 기부로 아이들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가지면 참 좋겠다"는 그의 꿈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모습을 감추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 얼굴 없는 천사들. 거리를 스치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누구일 얼굴 없는 천사는 그래서 모든 누구의 아름다운 선행일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별하고 잘나서가 아니라 누구나 기부천사가 될 수 있다는 나눔의 손짓. 마치 '나눔의 나비효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