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엔 아마도 세상살이가 그만치 어렵고 글 쓸 감도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으려니와, 수필이란 자의(字義)에서 보듯 붓 가는대로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자유로움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쉽게 쓸 수 있는 녹녹한 장르가 아니다.
수필이 주는 자유로움보다 쓰면 쓸수록 천인절벽 같은 막막함이 눈앞에 가로놓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고려 예종 때 고시(古詩)에서 해동1인자로 이름을 날렸던 김황원이 부벽루에 올라 대동강의 절경을 읊다가 황혼이 질 때까지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한 일이다.
글을 써본 분들이라면 한 줄도 나가지 못하는 이러한 막막함을 한두 번 경험해보지 않은 분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학의 모든 장르가 그렇지만 수필은 인생을 깊숙이 관조(觀照)하지 않고는 쓸 수도 없고, 독자에게도 감동을 줄 수가 없다.
수필은 무색의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빛깔 무지개로 아름답게 분석 투과된 스펙트럼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은 인생의 참 사람살이를 절절하게 체험한 중반이후에나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 이번 응모된 작품은 많았지만, 눈에 띄는 작품이 드물었다. '군불', '너와집', '쑥' 등 예닐곱 편이 최종선상에 올려 졌지만, 수필에게 요구되는 이러한 특질과 요소들이 많이 부족했다.
이들 작품들 공히 삶을 분석해낸 아름다운 스펙트럼도 엿볼 수 없었고, 인생과 연결된 재해석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들 중 '군불'은 좀 나아보였지만, 다른 작품들은 경물의 사생이나 묘사의 나열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당선작을 내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이렇듯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신변잡기 같은 게 아니라, 오랜 연찬(硏鑽)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장르라는 사실이 재확인되는 시간들이었다.
수필의 깊은 맛과, 아름다운 멋, 그리고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작품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