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핍 채워주는 감나무처럼 넉넉해지네

조미애 시집 '바람 불어 좋은 날'

 
 

시(詩)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었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 온 햇수를 생각해보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 같았다.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자신이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는 누군가의 말씀에 누가 되진 않을까 고민했다. 오랜 망설임 끝에 네 번째 시집'바람 불어 좋은 날'(신아출판사)이 나왔다. 조미애 시인(54)은 얼굴이 홧홧하다고 했지만, 시를 쓸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을 보내며 시처럼 살고 싶은 그날그날의 마음을 담았다.

 

시인은 시를 감으로 빗댔다. 시인의 결핍을 채우고 풍성한 수확을 이루게 해준 감나무가 포근한 위로가 됐다.

 

'홍시는 채반에 얹고 생감은 자루에 담는다 / 한 가지에 태어났으나 얼굴 다른 형제들이다 // 한줄 또 한줄 춤추는 감들의 향연 / 문득 고개 들어보니 어장인 듯 / 푸른 바다위에 감들이 줄을 지었다'('감' 중에서)

 

시집에는 바람 불어 좋은 날에 여린 속잎에 꿈이 영든 푸른 대숲에 들어('푸른 대숲에 들어') 청신한 시어를 건네는 시인이 있고, 연분홍 사랑이 꽃불로 번지게 하는('매화') 맑은 시상을 선물하는 시인도 있다.

 

시간과 속도 속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시대. 조미애 시인의 시편들은 그 속도와 시간에 저항하며 내일의 서정으로 나아가고 어제의 서정은 꺼트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냈다. 그렇게 시인은 당신의 '감나무'로 초대한다. 넉넉해진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린다.

 

전남 진도 출생인 시인은 1988년 '시문학'으로 등단해 시집'풀대님으로 오신 당신','흔들리는 침묵','풍경'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