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고은(高銀) 편 - 한 줄의 시가 곧 시대가 되는 노벨상 후보

▲ 고은 시인

고은(1933-)은 군산고등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하였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여 마을 사람들이 좌·우로 갈리면서 보복 학살을 일삼는 와중에 4학년을 마치고 중퇴하게 된다. 그후 입산, 효봉 스님의 상좌가 되어 11년간 승려생활을 하다 1958년 조지훈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 1970년 전태일 노동자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게 된다.

 

임이여, 나는 서방정토에 가지 않으렵니다

 

죽어서 죽어도 이 나라에 한 점으로 있으렵니다

 

죽어서 몸이야 흙이 되건만

 

내 넋은 흉흉한 귀신이 되어서

 

이 나라 이 강산에 있으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집 없이 떠돌기도 했습니다만

 

죽어서는 이 나라가 온통 집입니다

 

영산강 기슭에도 떠돌고

 

갈 수 없던 대동강 모란봉 위에도 떠돌면서 대동강

 

깊은 밤 술이 되어

 

우리 억압자의 배 안에 들어가렵니다. -「임종」에서

 

"출가하여 방랑생활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름답지만 현실에 대한 무책임이 아닌가? 자기 한 사람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중생의 괴로움과는 함께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군중과 함께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이야말로 성스러운 것이 아닐까"라고 자문하며, "아무리 세상이 허무하고 그림자이고 잠시 쉬어가는 집이라 할지라도 여기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중생을 위하여 뭔가를 해야 할 게 아닌가. 법도 법이지만 밥도 없어서는 안 된다"고 최근 조국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단언한다.

 

시인은, 모든 중생의 괴로움이 구제될 때까지는 결코 성불할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몸소 지옥에 떨어졌다는 지장보살에 자기 자신을 비유하고 있는 듯하다. "임이여! 나는 서방정토에 가지 않으렵니다. '죽어도 이 나라에 한 점 흙'이 되렵니다."가 그것이다. 외세에 의해 강제로 분단된 조국현실과 그에 기생해온 수구적 기득권자들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된 그의 시는 '물 얼고 모진 바람 불어도/ 함께 얼음 밑의 물이 되고/ 함께 태백산맥 바람의 아픔으로 바람소리가 되렵니다.'로 이어지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 몸 바치고자 하는 그의 순교 정신이 뜨겁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 몸으로 가자.

 

허공을 뚫고

 

온 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화살」전문,『새벽길』 창작과비평사 1978

 

1970년대, 암담한 그 시절에 우리 모두가 독재 정권을 향해 '화살'이 되어 날아가자'고,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고 외친다. 죽음을 각오한 결사 항전이다. 이로써 그는 당시 허무적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보수적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안고 있던 매너리즘적 도그마로부터 벗어나 소위 실천적 해방시학의 새 장을 열어주게 된다.

 

뿐만 아니다. '시로 쓴 한국사 인물 대사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만인보』를 통해 그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민중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다양한 모습을 폭넓게 형상화한 세계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역작이요 한국현대 한국 민중사의 자랑스런 얼굴이 아닐 수 없다.

 

'시(詩) 한 줄이 혁명이 되고', '시 한 줄이 곧, 시대가 되는 시'를 찾아 헤매면서도 최근에는『겨레말 큰사전』남북 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직도 맡아 "내 운명을 여기 다 바쳐야겠다."며 민족혼을 불태우고 있는 또다시 뜨거운 시인. 그리하여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있는 우리의 유일한 민중시인이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