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나 버스정류장 등 어디를 보아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열심히 손을 놀리거나,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있는 학생들뿐이다. 같은 땅을 밟고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데도 각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낯설어 보인다. 학창시절 우리를 설레게 했던 알폰스 도데의 '어느 목동의 이야기'에 나오는 아름다운 아가씨, 스테파노와 같은 이미지는 문학작품에서나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보다 오늘날의 인간 정신세계는 더 나아지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데 기계문명의 발전은 어지러울 정도이다. 제발 그만 좀 발달하면 안 될까 싶을 때가 있을 정도이다. 나방은 저의 둥지를 힘들게 빠져 나와야 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인간의 수명도 어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좋은 게 좋다고 우리는 생명의 한계를 계속 늘려만 가도 되는 것일까? 오래 사는 것만이 축복은 아닐 텐데….
지나치게 편리함을 추구하는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사회의 이면에 상대적 빈곤감과 소외감으로 인한 갈등의 벽을 쌓고 있다.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스스로 결정하는 생각의 힘도 잃어 가고 있다.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외롭기 때문에 둘례길 열풍과 집단 쏠림이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풍기는 느낌과 분위기는 다르게 마련이다. 상대에 대한 이러한 아우라(Aura)를 느끼지 못하니 눈에 콩깍지가 끼지 않아 결혼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나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도 SNS등으로 유포된 일부 사연들은 사고의 깊은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기저기 옮겨진 결과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염려하게 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끈 채 가공되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즐기고 싶다.
지난 해 11월 충북 옥천에서 한반도와 닮은 지형을 볼 수 있다는 둔주봉 전망대에 올랐다. 금강의 느릿한 물결이 여유롭다. 그런데 두 여인이 일행과 한참 뒤처져서 손을 잡고 오르고 있었다. 한 여인은 다리를 절며 다른 여인의 손을 지팡이 삼아 끝까지 올랐다. 좋은 심성과 배려로 아주머니의 자녀들은 잘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우리 사회의 갈등의 벽을 허물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계사년 뱀띠해다. 편리하고 새로운 것만 찾기보다는 옛 방식의 좋은 점도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한다. 매사에 너무 각을 세우지 말고 우리들 가슴의 응어리가 있다면 봄눈 녹듯 녹아내렸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인간이기에.
* 최동명 씨는 '덕진문학' 회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전 전라북도의회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