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락'(물건이 쏠리면서 가변게 나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 '잣바듬히'(몸을 약간 뒤로 비스듬히 뻗는 모양새), '울멍줄멍'(엇비슷한 체구의 사람들이 많이 모인 모양), '부숭숭'(살이 부어오른 모양), '어씩어씩'(어슷비슷하게 늘어선 모양새), '고무락거리다'(몸을 느리게 자꾸 움직이다', '포르릉'(작은 새가 갑자기 매우 가볍게 나는 소리'.
작고한 소설가 최명희씨(1947 ~1998)의 '혼불'에 등장하는 의성어·의태어들이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다. 나의 넋이 찍히는 그 무늬를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혼불'을 통하여 순결한 모국어를 재생하고 싶었다'
고인은'전아하고 흐드러지면서 아름답고 정확한 모국어의 뼈와 살 그리고 미묘한 우리 혼의 무늬를 어떻게 하면 복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늘 나를 사로잡는 명제였다'고 생전에 쓴 수필 '언어는 정신의 지문'에서 밝혔다.
고인이 그렇게 공을 들인 소설의 언어가 미술이 됐다. 최명희문학관(관장 정성수)이 서양화가 최지선씨(31)에 의뢰해 '혼불에 담긴 지문전'을 마련하면서다(올 연말까지).
최씨는 소설에 나오는 의성어·의태어들을 좁고 긴 형형색색의 헝겊 조각들을 겹으로 붙이고 그 안에 솜을 넣은 뒤, 한 땀 한 땀 바늘질로 글자를 표현했다. 각각의 글자들은 울퉁불퉁 튀어나오고 불풀어 올라 마치 글자들이 살아 있는 것 같은 입체감을 준다. 18점의 작품을 통해 '혼불'에 담긴 언어들을 만지고 느낄 수 있게 독락재 앞 기둥에 전시되고 있다.
최씨는 "'혼불'을 한 장 한 장 넘기면 숨바꼭질 하듯, 보물찾기 하듯, 아끼는 사탕을 녹여 먹듯이 언어들을 챙겼고, 어머니의 정성처럼 수를 높듯 작품 속 모국어들을 새겼다"고 했다. 그는 소설을 펼치면서 막막했던 마음이 작품에 담긴 무궁무진한 표현격을 사르르 녹게 됐다고 덧붙였다.
소설'혼불' 은 이번 전시회 이전에도 여러 작가들에 의해 다양한 방법으로 조명됐다. 고 지용출 화가와 서예가 이승철·이근수씨 등이 작품제목을 형상화 했고, 이주리·박시완씨는 고인의 초상화 작업을, 김두경·진창윤·임승환·한숙·김윤숙·나병채씨는 한옥마을 엽서로, 박승남·김미라씨는 혼불 필사본들을 쌓은 탑 작업으로 고인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