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바꾸지 않을 겁니까?

모든 유기체는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 안 홍 엽

 

(주)필 애드 대표

"지금 난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이 끔직한 시기를 견디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1940년대 영국의 대표적인 여류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외투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넣고 강물에 뛰어 들며 남편에게 남긴 유서의 한 대목이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심정에 매몰되지나 않을까 우려스럽다. 연이은 패배감과 상실감 박탈감과 열등감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지도자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허탈감까지 더해진다.

 

프로야구 10구단 유치 프로젝트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변명이 불가능한 사례로 남게 됐다. 시장성과 자금력, 사회성과 정치력, 정밀성과 준비력을 무시하고 설득력 없는 배분논리로 여론몰이를 앞세워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 당연한 결과다.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만 KT의 물량 공세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정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철저하게 시장논리로 가야하는 것이 프로구단의 운영 현실이다. 그럼에도 추진주체자들은 이를 간과했거나 무시했다. 발표 직후 젊은 부지사가 눈물을 흘리며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정작 책임질 사람이 누구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LH유치 실패로 상처 입은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당한 이 아픔은 2배, 3배일 수밖에 없다. 차별당하고 괄시 받던 세월을 처연(悽然)하게 살아낸 우리지만 이번 일은 경우가 다르다. 백성을 하늘처럼 받들어야할 사람들이 백성을 우습게 아는 패륜에서 오는 현상이다. 강제 동원된 군중집회, 하늘을 뒤덮으려한 깃발과 현수막, 삭발 행렬, 껴안고 죽을지언정 빼앗길 수 없다는 공허한 외침 그리고 끝내 정확하게 밝히지 못한 예산의 행방, LH유치 운동의 분통 터지는 결산서였다. 전시관행의 표본이었고 자치민주주의의 태생적 병폐이었으며 오만과 편견의 소산이었다. 도전은 좋으나 무모한 도전은 깊은 상처와 실망만 낳을 뿐이다.

 

이토록 무례한 오만과 편견, "그래도 바꾸지 않을겁니까?"

 

엎친데 덮친격으로 12·19대선 결과 '멘붕' 상태에 빠진 사람이 부지기수다. 전국적으로 멘붕족을 48.2%라고 한다면 우리는 87% 가 넘는다. 멘붕의 결과는 대통령을 우리 대통령과 너희 대통령으로 나누는 정신적 충격으로 나타난다. 내가 지지한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이고 네가 지지했으면 너희 대통령이라는 식이다. 2013년도 신년하례식에서 정동영은 이런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뉘우치는 건배사를 해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맥케인이 오바마를 우리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성숙함을 보고 정동영은 많은 것을 뉘우쳤다는 것이다.

 

박준영 전남지사의 '충동'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대선 개표방송에서 지도에 표시 된 색깔을 보았는가? 그리고 250명 선출직의 유니폼 색깔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생각해 보았는가?

 

"그 또한 지나가리라." 솔로몬의 지혜처럼 역사는 결코 고착될 수 없는 것이지만 DJ로부터 비롯된 야성도, 외로운 섬에 함몰된 고집도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 낙후의 쓰라림을 더 이상 참을 수는 없다. 우리야말로 "잘 살아보세"를 다시 불러야 한다.

 

새해도 벌써 20일이 지났다. 어느 누구도 1월을 죽음의 행진으로 시작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1월 1일 아침 새해를 보면서 생명의 행진을 다짐했다. "그래도 바꾸지 않을 겁니까?"를 화두로 던졌다.

 

모든 유기체는 변하지 않고 생존할 수 없음을 확인하면서….

 

△ 안 대표는 MBC 편성국장과 (주)하림 전무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북애향운동본부 부총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