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귀촌 4년차인 곽무영씨(71).
농촌생활이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는 곽씨.
"처음엔 이웃과의 관계도 어색했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온 탓에 처음 접해보는 것들이 얼마나 많던지 하루하루가 진땀나는 생활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마을 일이 있으면 앞장서 나섰다. 그러면서 조금씩 융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대성마을이 그린빌리지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사업 계획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벽화를 그려보자는 사업계획을 주민들과 함께 세웠다. 평소 뛰어난 예술적 감각이 있던 그는 마을 담벼락 15곳에 벽화를 그렸다.
비록 큰 변화는 아니지만, 마을주민들과 함께 힘을 합쳐 소박하지만 따뜻한 변화를 이뤄냈다.
그는 "아직도 완전하게 정착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제 진안을 떠날 생각이 없을 정도로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며 "벽화를 그리고 나서 마을주민들과의 관계도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진안읍 대성마을은 전주에서 차를 타고 30여분 전주-진안간 국도 26호선을 타고 오면 만날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 한 분은 "벽에 그려진 이 꽃이 우리 마을 복덩어리"라며 "꽃을 보러 사람들이 찾아오고 주민들의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을 앞 농가주택 담벼락에 핀 장미와 해바라기는 4계절 찾는 이의 발길을 반겨준다. 계절이 바뀌어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서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담벼락을 주시하며 더 깊이 들어가 보니, 측면 담벼락에는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글씨가 파란색으로 써 있다. 곽 씨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벽화를 그리고 한번 해보자는 의지를 담아 글씨도 적었다.
대성마을 안길 담장엔 정겨운 민속벽화도 그려져 있다. 소박하지만 뭔가 따사로움이 배어 있다. 왠지 모를 안도감과 친근함에 젖는다.
마주치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친근하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진다. 인사를 받은 한 할머니도 한마디만 물어보면 몇 마디는 풀어줄 것 같은 관심 가득한 표정이다.
골목을 지나 7분쯤 걷자 듬직한 느티나무 수십여 그루가 서 있다. 마을숲이다. 그 아래엔 모정과 주민들이 만든 옹달샘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옆으로 마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도 있다. 기와지붕에 벽은 흙으로 올렸다. 옛 생활관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디딜방앗간, 오른쪽에 정지가 있다. 정지는 부엌을 가리키는 방언이다. 옛 시골 할아버지댁에 한번쯤 가본 사람이라면 봤을 절구, 도리깨, 키, 맷돌, 지게 등 사라져가는 농기구를 구경할 수도 있다. 묘하게 눈이 쌓인 주변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대성마을은 전체 주민이 총 105명이다. 이중 70%에 가까운 72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이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진안군 '그린빌리지사업' 공모에 참여해 재료비 정도의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나머지는 모두 곽 씨와 주민들 몫이었다. 주민들이 모여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면서 관리까지 하고 있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함께 힘을 합쳐 소박하지만 따뜻한 변화를 이뤄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대성마을 한 주민은 "점점 활기를 잃어가는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첫걸음은 마을에 방치된 쓰레기를 치우고 마을 경관을 해치는 시설물들을 치우는 일이 그 시작이었다"며 "마을의 얼굴인 진입로에는 화단을 만들고 낡고 지저분했던 담장에는 아기자기한 벽화가 들어 앉아 정감 있고 매력 넘치는 마을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함께 땀흘려 나무를 심고 벽화를 그리고 마을박물관을 만들면서 우리 힘으로도 충분히 마을을 변화시킬 수 있고,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협동'한다는 의미에서 대성마을의 변화는 어찌 보면 1970년대 우리 농촌과 비슷한 모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의 과거 새마을운동 기본 정신과 유사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관에서 개입을 자제하고 마을 주민들의 생각을 사업의 성과로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