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년균 한국문인협회 명예 회장(70)의 무기는 농사와 시 쓰기였다. 경기도 양주시로 내려갈 때 이제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는 모양이라고 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뒤 그의 생활은 크고 작은 협회 일에 붙들려 있게 됐다. 그러나 "마음공부 삼아" 널따란 땅을 공짜로 빌려 각종 채소들을 키우며 사는 지금의 그는, 영락없이 세상의 온갖 허명(虛名)을 물리친 시(詩)를 쓰는 농부였다.
시골 살이가 좋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틈틈이 산을 오르내리면서 인심이 후한 이웃들과 금세 십년지기 친구가 될 수 있었고, 가까이 피어나는 들꽃을 꺾어 화병에 꽂아 감상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고 했다.
최근에 펴낸 시집'자연을 생각하며'(책만드는집)는 파란만장한 즐거운 전원생활의 이야기다. 대지에 뿌리박은 자연 서정시로 회귀한 그는 추억에 내재된 삶의 뿌리 깊은 슬픔을 정제되고 담백한 언어로 그려냈다.
'들판에 가면 꽃과 풀들이 해만을 따라 다닌다 / 해를 못 보면 목숨이 위태롭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략) 한 친구가 죽었다. 해를 놓친 까닭이다 / 후미진 길목에는 질경이풀이 무성하다. 생김새는 못났지만 해를 만난 까닭이다.'('해를 보는 나무' 중에서)
자연이 건네는 이야기를 눈과 귀로 세밀하게 기록한 것 같은 그의 시는 자연과의 합일이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를 노래한다.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도시에 살면서도 풀과 벌레, 나무 그늘에 깃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추억과 일상의 풍경을 구현해왔던 것. 전통 서정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감정들은 사물화 되거나 객관화 돼 지나치게 구태의연하게 보일 수 있는 구석을 메웠다.
아직도 별을 보면 꿈꾸는 것처럼 느끼는 그의 마음 속 텃밭에는 매일 새로운 싹이 돋아나고 있다. 마음껏 흘러가는 세월과 바람을 두고 '오로지 저들 손발만 붙잡고 살면서도 고마움은커녕 헐뜯고 조롱하는 심보가 골백번 괘씸하다'며 스스로가 '아직도 철들지 못했다'고 고백했지만, 그는 여기서 에누리 없는 존재의 절경을 매일매일 확인 중이다.
김제 출생으로 1972년 이동주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맡았으며, 시집'장마','그리운 사람','숙명' 외에도 수필집'사람에 관한 명상'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