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준 너에게 절하며 살고 있다 / 너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지도 몰라 / (중략) 아픔이어서 슬픔이어서 놀라운 지혜를 알고 / 단단하게 사는 법 배웠으니 아픔 준 너에게 인사해 본다 / 잃은 것만큼 채워 주는 고마운 하늘마음 있다는 걸 / 견고하게 세우며 살아가는 오늘이다'
'아픔 준 너에게'라는 시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황영순 시인(65)의 시집은 힐링보다 더 따뜻한 비애로 조금씩 체온을 올리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늘 침묵과 말줄임표로 이야기하는 쪽에 가까운 시인은 오랫동안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주저한 끝에 다섯 번째 시집'오후의 보법'(한누리미디어)을 펴냈다. 시인은 "나 자신에게 쓴 편지가 몇 년 만에 돌아온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소중한 인생의 오후에 마지막을 어떻게 노을처럼 물들이게 될 것인가 고민한 끝에 붙인 제목"이라고 덧붙였다.
누구에게나 삶의 짐은 버겁겠지만, 남부럽지 않게 풍족한 환경에서 살아온 그에게도 내면으로 침잠해가는 버거운 결핍이 있었다. 그러나 시는 그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했다. 시인은 "반성문을 썼던 시간을 딛고 일어섰다"고 기억했다.
"그간 발표했던 시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안 차는 여러 편을 대폭 재창작하다시피 했어요. 시력이 35년이나 됐어도 늘 미흡하고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에요.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쓸 줄 아는 시인이고 싶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지켜봐온 최승범 고하문학관 관장은 '어제를 기리고 내일을 생각한다'는 시를 통해 "황영순의 삶과 문학은 담쑥담쑥 변함이 없을 것이다. 오는 날 먼 오는 날도, 한마음으로 즐기라"고 격려했다. 김제 출생으로 1984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시집'한같이 그리움같이','내가 너에게로 가는 이 길','네가 내 사랑임에랴','짧고도 긴 편지'를 내놨으며, 전북여류문학회 회장·전북문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