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운주면 원금당마을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박용민씨(41). 쌍용자동차에서 16년을 근무했던 박씨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구조조정의 칼바람 때문이었다. 15명의 부하를 둔 '직장'의 지위에 있던 박씨는 어느 날 휘하의 직원 8명이 구조조정이란 찬바람에 해고되면서 도의적인 책임감에 휩싸였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사표를 던지고 나선 회사의 문. 회사원 시절 주도적으로 만들었던 봉사단체의 경험을 살려 경기도 평택시에서 ‘민생복지심부름센터’ 센터장으로 1년여 일했지만 이것도 자신과 가족의 일생을 맡길 만한 길은 아니었다.
귀농을 결심하고 완주군 운주면을 찾아 현지 답사에 나서길 여러 차례. 귀농을 권유하는 후배의 성원까지 덧붙여져 이삿짐을 싸들고 운주면 원금당마을로 나섰다.
박씨는 귀농자의 두 가지 금기사항을 첫 걸음부터 깨뜨렸다고 웃음과 함께 설명한다. 금기사항은 '땅을 사지 말라' '집을 사지 말라'이다. 자신의 생각과 현실이 맞지 않을 경우 이후 행동을 제약하는 최대의 짐이 부동산이란 말이다.
귀농과 함께 마을에 집을 짓고, 음식점이 딸린 산골 펜션을 덜컥 매입해 버렸다. 세상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귀농 첫해의 총수입금은 1500만원 정도. 투입 원가를 빼고 나면 입에 풀칠도 어려운 돈벌이였다.
음식점과 펜션은 계절적 진폭이 너무 심했다. 원금당을 가로지르는 냇가에 자리잡은 음식점은 한여름엔 손님들로 빼곡하지만 기온이 내려가면 발길이 뚝 끊겨 버렸다.
사업 다각화가 현안이었던 박씨는 완주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곶감에 손을 댔다. 곶감은 가을에 감을 수확해 가공한 다음, 겨울부터 설맞이 수요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름엔 '음식점과 펜션' 가을 겨울엔 '곶감'이란 사이클을 구축한 박씨의 연간 총수입액은 3000만원으로 어느 정도 늘었다.
특히 박씨는 운주에서 생산되는 감을 농민들한테 매입하고 직접 가공해 원가를 낮춰, 고품질 곶감을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었다. 50개 기준으로 크기에 따라 2만8000원부터 6만5000원으로 가격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한 셈이다. 이 같은 소문이 알음알음으로 이어져 해마다 판매량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도회지 생활에서 맺은 인연의 끈으로 유통되던 곶감의 판로도 온라인으로 확대되었다. 박씨는 지인들의 성원에 힘입어 인터넷 다음에 '운주숲속농장'이란 카페를 만들어 판로를 개척했다.
부인 이현주씨와 함께 갓 돌을 넘긴 아들을 안고 귀농한 일가족은 완주군 운주산 딸까지 더해져 이제 네식구로 늘었다.
성공 귀농을 좌우하는 최대 조건은 부부의 일심동체. 서울 토박이인 부인은 귀농의 평생 동반자이자 최대 지원자였다. 이씨는 대뜸 "농촌에 정말 잘 내려왔다"는 말과 함께 농촌생활을 설명한다. 생활공간을 둘러싼 쾌적한 자연환경과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을 나누는 삶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물론 불편한 점도 많지요. 문화생활도 어렵고, 아이들이 놀만한 공간도 부족하고, 아이들 교육도 쉽지 않고, 생필품을 살 가게조차 없어 소재지까지 나가야 하고, 아이들이 아플 땐 병원도 멀리 있습니다." 이씨는 푸념을 내뱉지만, 이는 감내할만하다는 대전제에서의 불편일 뿐이다.
귀농으로 쪼그라든 수입으로도 삶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모두 이씨의 근면과 절약이다. "농촌에선 생활비가 도시보다 훨씬 적게 들잖아요" 이씨는 활짝 웃는다.
박용민-이현주 부부는 또 다른 방향 전환을 궁리하고 있다. '농산물 가공산업에 한번 뛰어들어 볼까''완주군 로컬푸드 사업에 동참해 볼까'조만간 귀농 속에서의 작은 변신이 기대된다.
박씨는 마을 주민들의 신임과 지원으로 원금당 마을 이장직까지 맡으며 '마을 속으로, 주민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