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쓰는 수필은 어딘지 시적일 것 같고, 삶의 깊이가 묻어날 것 같다. 김용옥 시인의 수필은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生놀이''틈''아무 것도 아닌 것들''생각 한 잔 드시지요' 등의 수필집으로 수필가로서 입지를 단단히 한 그가 새 수필집 '살아야 하는 슬픈 이유'를 냈다(맘샘). 2005년부터 틈틈히 써온 글을 묶었다.
'또 하루를 살아갈 일이 두려워 본 적이 있습니까? 또 하루를 살아갈 일이 지겨워 본 적이 있습니까?'
표제에서 '슬픈'이 빠진, '살아가는 이유'의 글에서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오며 삶에 대한 철학적 고뇌를 진지하게 드러냈다. 그는 '살아가는 이유'를 어머니에서 찾았다. "성자의 말을 닮아 입으로 주워섬겨도 성자의 인생을 닮는 사람을 못 보았다. 보통사람만 널려 있다. 그런데 어머니의 속성이 곧 성자의 정심을 통감했다. 툭하면 성자상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간구하던 나는 제일먼저 어머니께 속죄했다."
'어머니는 진정 모든 사람의 사람신神이다'는 그의 어머니관은 '어머니의 지필연묵'편에서 더 구체화 된다. 어머니가 써주신'지족상락'(知足常樂, 족한 줄을 알면 늘 즐거우리라)의 명구를 무엇보다 귀한 가보로 삼았으며, 벼루함·붓상자·낙관함·묵 등을 소재로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풀어놓았다.
'제2의 나'에서는 손에 주목했다. "신이 자연을 창조했다면 인간은 예술을 창조했다. 그 예술을 창작하는 최상의 도구가 이 손이다.…내 손은 늘 내 심중을 육화한다. 소리 없고 문자 없는 내 언어술사다. 제2의 나다"고 했다.
수필집에서는 감나무 애찬론도 폈다. 꽃보다 아름다운 열매로 거듭나는 것이 조촐한 사람 같아 참 좋다고 했고, 표피가 자다잘게 터진 채 유난히 거무칙칙한 등걸과 윤기 자르르 흐르게 쪽 곧은 새 가지의 어우름이 아름답다고 했다. 까치밥을 남겨 자연의 생명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게 해 교육적이며, '가을 나들이 길 산자락에 발가벗은 채 정염으로 돋워낸 붉은 햇덩이를 사지 그득 매달고서, 청람 하늘 향해 열린, 기도하는 감나무는 진정 경건하다'고 보았다. 감꽃목걸이, 감잎바람, 감똑과 뾰주리감, 홍시 오우 등으로 감나무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했다.
수필집에는 또 5편의 캄보디아 여행기와 5편의 진도 여행기가 수록됐다. 1980년 '전북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전북문학상·신곡문학상·백양촌문학상·에스쁘와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