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JTV PD
물론 오랜 역사의 전주대사습과 전북도립국악원, 그리고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있다고 말하겠지만, 이미 전주대사습은 예전의 독창성과 권위를 잃어가고 있는지 오래 이고, 전북도립국악원은 변함없는 모습을 너무 오래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으며, 전주세계소리축제는 10년이 넘게 소리축제의 소리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정말로 전주가 소리의 고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중 우리고장 출신이 한 명도 없다는 이야기들이 최근에서야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그것도 보유자 5명 전원이 경쟁지역인 전남과 광주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에 실로 놀라움을 감추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역사상 최고의 소리꾼은 누구냐?"라고 내게 묻는다면, 주저 없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권삼득이다.
권삼득은 1771년 초포다리 바로 건너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서 양반의 자재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글은 싫어하고 소리를 좋아했으며, 사람, 새, 짐승 소리를 잘 한다고 해서 삼득(三得)이라 불렸다고 한다. 조선 8명창 가운데 하나였던 권삼득은 소리를 아주 잘하는 소리꾼이기도 했지만 권삼득이 위대한 점은 바로 '더늠' 때문이다.
더늠은 '판소리 명창이 사설과 소리를 새롭게 짠 대목'을 말하며, 박동진 명창이 자주 불렀던 '제비몰러 나간다'와 임방울 명창의 '쑥대머리'가 바로 대표적인 더늠이다. 이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을 창작한 이가 바로 권삼득이며, 지금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더늠이 이것이라고 하니, 권삼득은 더늠의 시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던 문화재 지정 유무를 떠나서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더 큰 문제점은 점점 일반 대중들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판소리는 어렵고 낯선 예술 장르이며, 재미 또한 찾기 힘든 것이 되어 버렸다.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스승의 목소리는 물론 손짓 하나, 표정 하나까지 나이어린 소리꾼들 또한 놀랄 만큼 그대로 학습하는 지금의 판소리계에서 새로운 작품, 새로운 더늠이 나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그 정도의 용기와 공력을 갖춘 소리꾼의 등장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늠'이라는 것이 시대와 관객들을 고려해 새롭게 짠 대목을 말한다면, 200여년 전 조선의 소리꾼 권삼득은 어떠했을까? 지금의 현실보다 더 큰 신분적 억압과 견제는 물론 창조성을 펼쳐보기에는 보수적이었던 당시 조선사회에 더 많은 장애가 존재하지는 않았을까?
결국 예술이라는 것의 속성이 새로움과 아름다움일진데 그 예술의 독창성과 창조성을 추구하기 위해 한 발짝 내디딘 권삼득의 용기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더욱이 슬픔을 노래하던 계면조 판소리 일변도에서 설렁제를 개발, 씩씩하고 용감한 소리로도 판소리가 불리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으며, 일부 계층의 소리가 아니라 양반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향유할 수 있는 진정한 음악장르로 판소리를 자리매김하였다는 점은 권삼득이 판소리사에 남긴 커다란 업적이 될 것이다.
이러한 권삼득이 나고 자란 고장이 우리고장이며, 지금도 권삼득의 묘와 소리굴이 완주에, 국창 권삼득 기적비와 권삼득로가 전주에 오롯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2013년이 아닌 1813년 판소리 서바이벌 경연이 한양에서 펼쳐졌다면, 흥부를 질투한 놀부가 제비를 잡으러 나가는 대목을 유일하게 자신의 스타일로 창작한 권삼득 참가자가 조선을 대표하는 가수가 될 수 있지는 않았을까?
1813년 슈퍼스타K의 우승자는 권삼득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